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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판 위 밀고 당기는 재미에 푹 빠지다

수원 씨름 동호회 <밀당>
동호회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SPORTS1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출근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일요일 저녁. 끝나가는 주말이 아까워 울적할 법도 한데,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광교씨름체육관에 모인 이들은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 서로의 샅바를 붙잡고 힘을 겨루는 이들의 눈빛은 즐거운 승부욕으로 빛난다. 땀으로 일주일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기합으로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씨름 동호회 <밀당> 회원들이다.

매주 일요일은 밀고 당기는 날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샅바를 움켜쥔 손끝, 맞붙은 어깨에서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밀 것인가, 당길 것인가. 고민하며 발을 움직이는 사이 모래밭 위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지고, 한순간 전광석화 같은 기술이 상대의 틈을 꿰뚫는다. 순식간에 무너진 균형. 모래밭에 드러눕는 이와 승리의 포효를 지르는 이가 갈린다.
“몸은 격투기처럼 쓰되, 머리는 바둑 둘 때처럼 써야 해요. 순간적인 판단으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경기잖아요.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2017년 6월, '밀당'을 결성한 이정훈 회장은 학창시절 씨름선수로 활동하며 몸소 씨름의 매력을 배운 사람이다. 한동안 모래판을 떠나있던 그는 씨름이 어떤 스포츠인지 궁금해하는 지인들과 함께 씨름을 즐길 방법을 모색해보다가 직접 동호회를 만들고, '밀고 당기는' 씨름의 특성에서 착안해 '밀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씨름 동호회 이름 중에 멋있는 게 많아요. 저도 처음엔 코뿔소나 피닉스 같은 이름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이름은 이미 많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씨름이 밀고 당기는 운동이니까 '밀당'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멋은 덜할지 몰라도, 여성 회원들은 귀엽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이정훈 회장을 포함해 6명의 사람이 모여 시작된 밀당은 이제 회원 수 50여 명의 어엿한 생활체육 동호회로 성장했다. 이정훈 회장과 김하나 총무가 각각 남성 회원과 여성 회원을 관리하며, 매주 일요일이 되면 수원 지역 내 엘리트 선수 및 감독들과 함께 광교씨름체육관에 모여서 샅바를 붙잡고 땀을 흘리고 있다. 덕분에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는 일요일에도 지치지 않는 기합으로 시끌벅적하다.

선수 못지않은 열정과 체계적인 훈련으로

밀당은 결성 1년 만에 본격적으로 모래판에 발을 들였다. 경기도 씨름왕선발전, 전국생활체육대축전 등 씨름판이 열리는 생활체육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지난해에는 경기도생활대축전 종합우승, 전국생활체전 여자부 매화급(-60kg) 우승, 남자부 40대부 준우승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외에도 전국생활체육대장사씨름대회, 전국씨름왕선발 대회 등 전국 규모의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제 전국에서 ‘씨름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밀당을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다.
밀당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씨름에 대한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과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다. 김하나 총무는 "수원은 우만초, 동성중, 수원농생고, 경기대를 잇는 엘리트 육성코스가 잘 마련되어 있다"라며, "엘리트 코스 지도자분들의 도움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감독님들과 씨름협회 분들께서 생활체육이 살아야 엘리트 씨름도 산다고 생각하세요. 전문적인 훈련이 가능한 이유죠. 남자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오늘처럼 수원농생고 학생들이 훈련을 도와줘요. 사실 학생들도 쉬는 날인데, 나와서 같이 운동해 주니 고맙죠. 여자 선수들은 우만초, 동성중 감독님께서 봐주시는데 가끔은 초등학생 선수들과 샅바를 붙잡을 때도 있어요.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선수잖아요. 이기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러다 가끔 이기면, 아이들이 다음에 더 연습해서 와요. 저희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동호회 사진
모래밭 위 걸크러시

씨름이 남성들만의 스포츠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다.
밀당의 남녀 회원 비율은 6대 4 정도로 여성 회원들의 참여와 활약이 눈에 띈다. 지난해 경기도 씨름왕 선발전에 참여한 밀당 여성 회원들은 매화급에서 1, 3위, 국화급(-70kg)에서 2, 3위, 무궁화급(-80kg)에서 1, 3위 를 차지했다.
생활체육에서 시작해 프로 무대까지 진출한 선수들도 있다. 생활체육에서 매화급, 국화급을 제패한 김수현 선수와 박지유 선수가 화성시청에 입단한 것. 안산시청 소속의 김단비 선수도 밀당 출신이다.
여성 선수의 박력에 반해 씨름을 시작한 회원도 있다. 안산시청 김은별 선수의 팬이라는 김설영 씨는 현장에서 김은별 선수의 씨름을 관람한 뒤, 기술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밀당에 들어왔다.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보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밀당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1년. 팬심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이제 씨름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이런 애정을 싹틔운 건 동호회 활동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밀당에는 다른 사람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저도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꾸준히 나오게 되더라고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 밀당에 더 많은 회원이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좋아하시는 씨름선수가 있다면, 더욱 추천해 드립니다. 꾸준히 대회에 참가하다 보면 선수들과 샅바를 붙잡을 기회가 생기기도 하거든요(웃음).”

보는 재미에서 하는 재미로

밀당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씨름의 팬이었다던 김하나 총무는 “TV에는 씨름의 매력이 다 담기지 않는다"라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라고 말했다. 단 1분 안에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화려한 기술까지. 눈 돌릴 틈도 없이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진우 씨 역시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본 뒤 씨름에 빠져든 케이스다. 2023년 화성시민한마음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씨름을 관람한 그는, 그 재미에 이끌려 곧장 씨름 동호회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닿은 곳이 바로 밀당이다.
"경기를 너무 재밌게 봐서 저도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알아보니 수원에 씨름 동호회가 있다고 해서 1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덩치가 커서, 저는 제가 잘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보는 것과는 정말 달랐어요. 씨름은 덩치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3~4년은 꾸준히 배워야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해보고 4~5일은 진짜 온몸이 아팠습니다(웃음). 그래도 계속하고 싶어요. 전신운동이라 건강에도 좋고, 몸이 점점 탄탄해지는 게 느껴져요."
씨름의 매력을 몸소 체감한 정진우 씨는 자신이 사는 화성에서도 씨름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올해 1월, '화성코리씨름단'을 결성해 밀당과 함께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생활체육의 씨앗을 또 하나 틔운 것이다.
씨름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밀당은 더 많은 사람이 씨름을 즐길 수 있도록 목소리를 모으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이정훈 회장은 생활체육대회의 체급을 더욱 세분화해 선수 풀이 확장될 수 있도록 전국 생활체육 동호회, 협회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관련 위원회에 전달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도 준비 중이다.
물론, 다가오는 전국생활체전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이정훈 회장은 "언젠가 전 체급을 석권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면서도, "회원들이 승패에 상관없이 긴장하지 말고, 부상 없이 준비한 기술을 다 써먹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밀고 당기는 몸싸움 속에, 씨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자라고 있다.

동호회 안내

SNS: 인스타(@SUWON_SSIREUM) 네이버블로그(vxy1867)
결성 시기: 2017년 6월
동호인 수: 50여 명
모임 주기: 매주 일요일 오후 5시~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