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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3년 6월 스포츠히어로
금빛
거미소녀,
Unbelievable!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서채현 선수(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서울시청)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계 보물 같은 존재다. 만 15세가 되자마자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국제무대에 진출, 데뷔 해인 2019년 리드 부문 세계 1위에 올라 '거미 소녀'라 불렸다. 클라이밍 최연소 나이로 2021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고 2021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채현 선수는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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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네요(Unbelievable)!" 2021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확정하는 순간 중계방송 해설자가 외쳤다.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모두 최종 홀드를 찍고 결승에 올랐으며 결승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완등한 선수, 서채현이다. 지난 4월에 열린 2023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제43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에서 콤바인(리드와 볼더링 종합) 1위를 차지하며 항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지만 이미 올림픽이라는 빅 이벤트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터라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거미소녀 서채현 선수'라고 하면 단단한 어깨 근육과 홀더(암벽의 인공 손잡이)를 움켜쥔 억센 손, 정상을 올려다보는 날카로운 눈매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만난 서채현 선수는 작은 어깨 위로 단발머리가 찰랑거리는 10대 소녀였다. 웃으면 눈이 반달처럼 변하는 앳된 얼굴이다. 이처럼 평범한 모습으로 세계 클라이밍계를 평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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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은 10년지기 재미있는 친구

서채현 선수가 클라이밍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클라이밍 국가대표선수 출신인 데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는 클라이밍짐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니 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생후 6~7개월째부터 아버지 등에 업혀 등반을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서채현 선수는 "부모님이 클라이밍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분명 저는 클라이밍을 했을 것 같아요. 좀 늦게 시작했을지는 몰라도"라며 이만큼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웃는다.
"일곱 살부터 암벽을 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줄에 매달려 그네 타듯 노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저에게 클라이밍을 강요하거나 무리하게 훈련시키지 않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나봐요.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클라이밍을 하기 싫다고 여겨본 적이 없어요. 암벽등반은 저에게 '재미진 친구' 같아요."
어릴 때부터 암장이 놀이터였고 그곳에서 친구처럼 사귄 것이 암벽이었다. 하루 종일 암장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따로 친구를 사귈 틈도 없었다.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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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천재? 피나는 노력이 만든 선수

사람들은 서채현 선수를 두고 어릴 때부터 '신동'이니 '암벽 천재'니 하면서 그의 타고난 재능에 주목했지만 어머니 전소영 씨(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선수)는 "채현이는 천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딸이 얼마나 노력형 선수인지 모르니 하는 말이라는 것. 하루 8시간 이상을 벽에 매달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손바닥엔 굳은 살이 박혔고 지문도 닳았다. 부단히 노력해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타고난 재능만으로 좋은 스포츠 선수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아주 많습니다. 다만 그 재능으로 오래 하는 선수는 드물 뿐이죠. 그만큼 힘드니까요. 언젠가 채현이도 '오래 끝까지 하는 선수가 제일 잘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어머니의 입장에서 서채현 선수에게 힘든 것은 암벽 타기 훈련이 아니다. 친구 만나기, 맛있는 것 먹기 등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기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쓰럽다고 토로한다. 그럴 때마다 서채현 선수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며 부모님을 위로하고 설득하는 입장이 된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채현 선수는 고등학교 시절 전교 1~2등을 다투며 장학금을 받던 수재였다.
"대학진학 후 휴학하는 쪽으로 결정하길 바랐지만 채현이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집중하고 싶다며 다른 친구들이 갈 자리를 뺏는 것보다는 원서를 넣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대학은 은퇴 후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때 가겠다고 하니 허락할 수밖에 없었어요. 채현이는 지금도 '엄마, 나는 운동 대신 공부를 했어도 잘했을 거야'라고 말해요."
딸의 선택에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채현이처럼 행복하게 사는 아이가 드물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지지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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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하고도 경쟁하지 않는다.

서채현 선수는 훈련할 때보다 실전에서 더 좋은 실력을 발휘하는 편이다. 그 비결은 경쟁자에 대해 신경 쓰는 대신 주어진 루트를 완등하겠다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은 다른 선수와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좀 더 깊어진 것은 도쿄올림픽에서의 쓰라린 경험 덕분이었다. 서채현 선수는 결승전 리드 부문에서 1등을 하면 동메달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리드는 서채현 선수가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부문으로 웬만한 대회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2위에 머물면서 종합 순위 8위에 머물고 말았다.
"제 바로 앞에서 경기를 펼친 선수가 완등했다는 것을 알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 선수보다 더 빨리 완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이미 경기를 끝낸 선수와 경쟁을 하고 있더라고요. 충분히 갈 수 있는 루트였는데도 페이스를 놓치고 말았어요. 그땐 너무 아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없이 값진 경험이었어요. 부모님은 올림픽 출전만으로도 굉장히 기뻐하셨는데 결승전까지 경험했다며 축하해 주셨어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앞서 오는 8월에 스위스 베른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있다.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대회인 만큼 현재는 세계선수권대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는 서채현 선수. 도쿄에서 값진 경험을 쌓은 서채현 선수는 파리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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