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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4년 5월 스포츠히어로
신궁의 슛오프
양궁 국가대표
양궁
이우석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양궁 국가대표 이우석 선수가 세 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뼈 아픈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한층 성장하고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흔들림 없는 릴리즈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의 앞에 남은 것은 이제 파리올림픽에서의 후회 없는 슛오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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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가 좋았던 소년 궁사

‘퉁- 탁.’
화창한 날씨, 녹음이 가득한 양궁장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과녁에 명중하고, 굳이 달려가 확인해보지 않아도 결과는 텐.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팀이 세계를 제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천선수촌 양궁장에서 만난 이우석 선수는 연일 계속된 경기와 훈련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해사한 얼굴로 편집팀을 맞이했다. 10살 무렵 양궁을 시작해 어느덧 양궁 인생 19년 차로 접어든 그는 슈팅 라인 앞에서는 매서운 눈빛으로 과녁을 노려보는 프로선수이지만, 사석에서는 그저 다정하고 해맑은 청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우석 선수가 양궁을 잡게 된 이유 또한 다소 깜찍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 양궁부가 있었어요. 형들이 활 쏘는 거 보면서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때는 양궁이라는 종목을 아예 몰랐고 관심도 없었죠.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쯤 게시판에 양궁부 모집 공고문이 붙었는데 피자, 치킨을 무료로 준다고 적혀 있는 거예요. 당시에 부모님이 제 건강을 생각해 불량식품이나 패스트푸드 같은 걸 못 먹게 하던 때라 그런 음식에 대한 열망이 컸는데 공짜로 준다고 하니까.(웃음) 부모님 몰래 양궁부에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걸렸죠.”
그렇게 우연히 잡게 된 활이 전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오히려 어린 학생이었기 때문에 고된 훈련 없이 재밌는 활동만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재미가 붙어서 이후로도 쭉 양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간 이우석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나간 2013 전국체육대회에서 양궁 남자 고등부 5관왕을 기록하고, 이듬해 중국 난징유스올림픽에서 17세 이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모두에게 차세대 신궁이라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국가대표 평가전을 단번에 통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돌아보니 성적에 대한 압박과 집착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 그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키포인트였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국가대표가 되어 행여 자만하거나 마음이 들뜨지는 않았는지 묻자 이우석 선수는 오히려 당시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밑에서 계속 치고 올라오는 우수한 선수이 많이 있었고, 국가대표 평가전을 뛰면서 실력있는 선수들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당시 제 실력 정도는 대단치 않다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라며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되짚었다.
마냥 놀고만 싶은 청소년 시절, 훈련이 싫었을 법도 한데 이우석 선수는 엇나감 없이 한결같았다. 세계대회에서 신기록을 내고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동안에도 그는 늘 연습이 끝나고 나면 주어진 일을 잘 끝마쳤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PC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고. 학창 시절 내내 학교와 집, PC방밖에 몰랐다는 그는 그 세 곳을 거쳐 가는 루트 안에 반드시 자기가 있었다며 웃었다.
“그래서, 어릴 때 피자랑 치킨은 만족할 만큼 드셨나요?”
“아니요. 사기당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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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인생의 변곡점이 되다

지난 4월, 이우석 선수는 대한민국 양궁 전사들과의 불꽃 튀는 경합 끝에 2024 파리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의 첫 올림픽 데뷔다. 당당히 선수촌에 입촌한 그는 일분일초를 허투루 보내는 법 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낮에는 양궁장에서 적게는 600발, 많게는 1,000발 가까이 되는 화살을 날리고, 공식 훈련이 끝난 저녁 시간에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잠들기 전 빠짐없이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도 큰 도움이 된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표적지를 그린 다음 실제로 활을 쓰는 것처럼 감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그날 훈련했던 것을 복기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우석 선수가 이처럼 연습벌레가 된 배경에는 바로 2020 도쿄올림픽이 있다. 세계 대회는 유독 그에게 모질었다. 그는 이미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간발의 차로 석패하며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셔야만 했던 그는 한동안 무섭게 번 아웃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떨어지고 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올림픽이랑은 진짜 연이 없나 보다.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바닥까지 깊숙이 내려갔거든요.”
홀로 극복하기엔 버거운 시간을 흘려보내며 ‘양궁을 그만둘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친 그 순간, 돌연 번쩍하고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그의 선수 인생이 변곡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잠들기 전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목숨을 걸 만큼 노력했었나?’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래, 한번 죽을 만큼 노력해보자’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죠.”
어둠 속에 갇혀 그대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기에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아깝고 소중했다. 도쿄올림픽, 다음에 있을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진 이우석 선수는 동계 시즌에 입촌한 뒤 그 해가 끝날 때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맹렬히 훈련했다. 할 수 있는 날에는 야간 운동까지 빠짐없이 참여했다.
벼러왔던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하던 날 그는 ‘노력한 만큼 성적이 따라와 준다’라고 생각하며 담담히 시합에 임했고, 마침내 금메달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때, 내가 만약에 잘 못한다고 하더라도 큰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경기가 나쁘면 후회가 컸고, 결과에 따라 스트레스가 심했거든요. 그런데 사고 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했고,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이렇다면 받아들여야지. 다음엔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는 시합이 잘 안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았어요. 결과가 나쁘더라도 다시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이 나더라고요.”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항저우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은 그의 선수 인생 중 가장 혹독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련에 무릎 꿇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어떻게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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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길이 기억될 모두의 국가대표

다른 종목이 그러하듯 양궁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기다. 특히 양궁은 국민 모두 믿어 의심치 않는 메달 효자종목인 만큼 차세대 양궁 스타의 탄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우석 선수 또한 그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 어떤 마음가짐일지 궁금했다.
“부담감이 없지는 않죠. 그런데 이 부담감을 끌어안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있으니까요. 국가대표의 임무는 국제대회에 나가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거잖아요. 그 목표 하나 보고 나아가는 거죠. 아마 양궁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대표가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대회를 치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겸허한 자세로, 바라던 올림픽 무대를 드디어 목전에 둔 이우석 선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마인드 세팅을 하고 있다. 그는 항저우아시안게임 개인전 준결승에서의 아쉬운 결과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지난날의 실패가 트라우마가 되어 경기 내내 상념에 빠졌었다고. 돌아보니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했으면서 어째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는지 못내 아쉽다. 그때 만약 잡념을 털어버리고 집중했더라면 충분히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이라 자평하며, 다가올 파리올림픽에서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의 승전보로 남아 있는 그림자를 덮어버릴 요량이다.
“일단은 파리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최우선 목표로 준비하고 있고요. 개인전이나 혼성전까지 출전하게 된다면 꼭 금메달을 수확해서 양궁팀 최종 목표인 금메달 5개를 꼭 이루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양궁팀 모든 선수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끝까지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한결같이 양궁장에 들어서는 이우석 선수. 시위를 당기기만 하면 백발백중인 그가 훈련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이 선수는 바로 그 백발백중을 만들 수 있는 상태로 접어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수백 발씩 화살을 쏟아붓다 보면 ‘이렇게’ 쏴야 10점을 맞힐 수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매번 ‘이렇게’가 조금씩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그 변화의 폭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관건이고, 결국 답은 숱한 연습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시위를 당긴다. 시선과 손끝뿐만 아니라 온몸의 모든 감각을 한 점으로 맞추는 작업, 그것이 바로 이우석 선수의 양궁이었다.
“국가대표로서의 목표를 이야기할 때 흔히 올림픽 금메달을 이야기해요. 물론 저도 그건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나름의 목표는 가장 오래 활동한 양궁 국가대표로 역사에 기록되는 거예요. 사실 최근 들어서 어깨가 그렇게 좋지 않아요. 작년부터 쉬는 날 없이 훈련을 계속했더니 무리가 온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 몸 관리를 해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몸이 허락해주는 한 최대한 오래 활을 잡고 싶어요. 지금은 임동현 코치님이 가장 오래 활동한 국가대표로 기록되어 있는데, 코치님보다 단 1년이라도 더 길게 선수로 뛰고 싶어요.”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