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나라 취약 종목인 여자 유도 최중량급 간판스타로 우뚝 솟은 김하윤 선수.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후회 없는 한판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가 드디어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한다.
취미로 시작한 유도, 인생을 바꿀 줄이야
아침 식사와 개인 정비를 막 끝낸 오전 10시. 진천선수촌 유도장에 열한 명의 전사가 떴다. 태극마크를 달고 파리올림픽에 임전할 준비를 끝마친 위풍당당한 유도 선수들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귀여운 선수가 있다.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 그는 바로 유도 국가대표 김하윤. 지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온 국민의 머릿속에 티 없이 맑은 미소 하나를 각인시킨 우리의 금메달리스트다.
김하윤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금 늦게 유도를 시작한 늦깎이다. 국가대표 중 많은 선수가 이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유망주로 점찍혀 온 것과 달리 김하윤 선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유도복을 입었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좋아 이전부터 태권도며 검도,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에 조금씩 발을 담가보곤 했는데 유독 유도가 그의 손에 착착 감겼다.
취미로 가볍게 시작한 운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김하윤 선수의 잠재력은 주변 사람들의 눈에 먼저 띄었다. 프로 운동선수로서 진로를 탐색해 보라는 주위의 권유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건 별개의 이야기. 특별한 계기가 있느냐 문자 김하윤 선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깜찍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 그 이유가 컸던 것 같아요. 선수를 하면 대학교를 그냥 갈 수도 있다! 그걸 알았을 때 운동선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웃음)."
고등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선수 활동을 시작한 김하윤 선수는 유도를 배운 지 1년 만인 2015년, 제9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자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 3년간 전국체육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유도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그렇게 김하윤 선수는 소망한 대로 수월하게 대학 진학을 이뤄냈다. 여러 대학의 러브콜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한국체육대학교 최중량급 금메달리스트의 재목을 알아본 전 유도 금메달리스트 조민선 교수의 손을 잡았다. 대학에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김하윤 선수는 주특기인 안다리걸기를 완성해 냈고, 2019년 IJF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랭킹의 고지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예쁘게 웃고 넘겨버릴래
"아무래도 유도는 한판 메치고 승리하는 것 그게 제일 매력인 것 같아요."
유도의 매력은 간결하지만 명료하다. 상대 선수를 시원스럽게 메쳐 한판을 따내는 순간, 선수 본인과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하지만 그 시원한 한판, 결정적인 한순간을 위해 유도 선수가 흘려야 하는 땀방울은 메달 하나로 보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듯하다.
"새벽에 체력 운동할 때가 제일 힘들다"라고 밝힌 김하윤 선수의 말처럼 유도 국가대표팀은 훈련이 혹독하기로 소문나있다. 종일 이어지는 강행군에 한 번쯤 투덜거릴 법도 한데 김하윤 선수는 씨익 웃고 훌훌 털어버린다. 세계랭킹 4위를 쟁취할 때까지 남다른 피지컬과 운동 감각, 숙련된 기술도 중요했겠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야말로 그의 최대 강점이 아니었을까?
"저는 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져요. 훈련 중 쉴 때마다 감독님께서 '이렇게 계속 쉴 거냐, 시합 때도 이렇게 그만둘 거나'라고 혼내 주시는데, 그러면 더 정신 차리고 훈련하게 되더라고요."
김하윤 선수의 긍정적인 자세는 여자 유도 국가대표팀 김미정 감독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미정 감독은 김하윤 선수가 처음에는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시작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해 이내 1군으로 올라왔고, 그때부터 더욱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이어 1991년도 유도세계선수권대회 최중량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문지윤 선수의 강점이 바로 '빠른 발'이었다고 언급하며, 김하윤 선수 역시 월등한 순발력을 갖추고 있어 충분히 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김하윤 선수는 체격에 비해서 굉장히 빨라요. 헤비급인데도 유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역시 못 하는 게 없을 정도로 운동 감각이 굉장히 좋죠. 이번 세계대회를 보셨으면 알겠지만, 김하윤 선수는 엄청 빠르고 굉장히 공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긴장감도 없어요. 연습 때 잘하는 선수가 막상 시합에서는 긴장 때문에 경기를 잘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김하윤 선수는 안정적이에요. 두려움이 없어요. 그리고 시합에 지면 질수록 더 과감해져요."
국제 대회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바탕으로 최중량급 메달리스트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던 김하윤 선수였지만, 지난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시며 아쉽게 올림픽 출전권을 놓치고 말았다. 당시 갑작스레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체중이 20kg 가까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경기에서 선전하기 힘들었던 것.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김하윤 선수는 실패를 딛고 우뚝 일어섰다. 다음 세계대회를 기약하며 곧바로 몸 관리와 훈련에 들어간 결과 포르투갈 그랑프리, 파리 그랜드슬램 등 유수의 세계대회를 제패했고, 이어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노메달의 수모를 겪을 뻔했던 유도의 구원투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