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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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에서 드디어 하계올림픽 100호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생애 처음 올림픽에 도전한 사격 반효진 선수. 어린 나이에 얻게 된 큰 성과에 마음이 들뜰 법도 한데 그는 이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이라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총을 겨눈다.
첫 올림픽 무대에서 드라마를 만들다
2024 파리올림픽은 그야말로 금의 향연이었다. 올림픽 첫날부터 금을 캔 대한민국 선수단은 하루하루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며 우리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었다. 선수단이 활약한 수많은 시합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경기를 꼽으라면 하계올림픽 100호 금메달이 탄생한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격 여자 공기소총 10m 종목에 출전한 반효진 선수는 생애 첫 올림픽 도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특히 결선에서는 지난 6월 열린 2024 국제사격연맹(ISSF) 뮌헨 월드컵사격대회에서 1, 2위전을 다퉜던 중국의 황 위팅 선수와 재회해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결선에서 10.9점이 나오는 게 가장 좋거든요. 총점으로 봤을 때 거의 1점을 따라잡는 거니까 차이를 확 좁힐 수 있어요. 총 쏘면서 ‘제발 한 번만 맞아라, 한 번만 맞아라’ 하면서 쐈던 것 같아요.”
결선 2위로 시작한 반효진 선수는 두 번째 스테이지 2차와 3차 사격에서 10.9점 만점을 사격하며 앞서 달리던 황 위팅 선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어 근소한 차이로 매번 황 위팅 선수의 점수를 넘으며 선두를 유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점수 차는 고작 0.1 내지는 0.3점.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짝 추격하는 라이벌에 대한 초조함은 없었을까.
“사실 저는 총을 쏘면서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사격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쏘면 상대방 점수를 알 수 있었을 텐데, 제가 격발이 좀 느린 편이라서 잘 몰랐어요.”
6차 사격 두 번째 격발에서 황 위팅 선수가 9.6점을 쏘자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대로 반효진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선 마지막 사격에서 반효진 선수의 실점과 황 위팅 선수의 만회로 동점이 만들어지며 두 사람의 드라마는 절정에 다다랐다.
“제가 마지막 발에 큰 실수를 해서 지난 뮌헨 월드컵 때처럼 또 2등을 한 줄 알았어요. 근데 최종 점수를 확인했을 때 슛오프가 결정됐길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죠. 뮌헨 월드컵 때는 10.1점을 쐈는데도 2등이더니 이번에는 9.6점을 쏴도 슛오프네, 진짜 운이 따라준다. 나를 위한 자리인가보다. 싶었어요.”
금메달을 결정짓는 마지막 한 발. 모든 관중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슛오프가 시작되고, 곧이어 총성이 울렸다. 먼저 격발한 황 위팅 선수가 10.3점을 기록하고 곧이어 반효진 선수가 10.4점을 내며 금메달을 결정지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계올림픽 통산 100호 금메달리스트 탄생의 순간이었다.
사격 천재 반효진, 등장!
국가대표가 되자마자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도 모자라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사격을 시작한지 겨우 3년 만의 일이다. 아무래도 반효진 선수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같이 배우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중학교 사격부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도장에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격이 그 정도로 매력이 있나?’ 싶었는데 어느 날 등교를 하다가 ‘너도 들어와. 이번에는 같이 사격 해보자’라며 꼬시는 거예요.”
“작년에 전국체전을 앞두고 연습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힘들었는데 ‘괜찮아, 너 지금은 못해도 어차피 이 세계의 짱은 너야’ 이러면서 스스로 세뇌시켰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자신을 제일 믿는 사람이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태권도를 배웠던 반효진 선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공기소총을 잡았다. 당시 다녔던 학교에서 사격부를 육성하고 있었는데, 먼저 입부한 친구가 같이 사격을 해보자며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동안 태권도를 배우면서 ‘나중에 크면 선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어렴풋이 품었던 생각은 사격을 만나면서 ‘반드시 선수가 되어야지’라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사격부에 들어가면 무조건 체고로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선수할 각오를 했던 것 같아요.”
당시 사격부에서는 공기소총만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기소총이 반효진 선수의 주 종목이 되었다. 총기류가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겁도 조금 났지만, 총을 쏘다 보니 사격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언뜻 생각하면 가만히 서서 총을 쏘는 사격이 다른 운동에 비해 힘들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큰 오해다. 더욱이 공기소총은 무겁고 길어서 격발 시 몸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사격용 특수 복장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소총의 무게는 5.5kg, 특수 복장의 무게도 5.5kg이다. 선수들은 무려 11kg의 무게를 지탱하며 2시간 이상씩 훈련하는 셈이다. 정밀한 조준을 위해 허리를 꺾고 몸을 둥글게 마는 등의 자세 훈련과 얇은 받침대 위에 올라서서 총을 들고 버티는 중심 훈련, 모래주머니를 달고 사격하는 무게 훈련도 진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높은 집중력이다.
“저희는 만점(10.9점)이 굉장히 힘듭니다. 완벽한 자세와 호흡을 갖춘 뒤 조준해서 쏴야하고 운도 따라줘야 해요. 10점의 범위가 0.5mm 샤프심으로 콕 찍은 크기인데, 거기서 또 9등분을 해서 점수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10.9점을 내는 건 정말 어렵죠.”
반효진 선수는 집중력은 체력에서 온다고 생각한다며, 예전부터 운동을 해온 덕에 기본적인 집중력과 체력이 좋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실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집중력 훈련이 필요했다. 그렇게 반효진 선수가 찾은 방법은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상상만으로 시합 한 번을 뛴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선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격 경기는 보통 시합 준비와 연습 사격으로 시작해 본선을 끝내기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반효진 선수는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부터 본선 마지막 발을 쏠 때까지의 루틴을 꾸준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다 보면 상상 속 경기 시간이 실제 경기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다섯 발을 쏘는 것도 힘들었어요. 실제로는 총을 쏘고 있지 않은데, 그 순간에 내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노래가 나오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상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버겁거든요. 그런데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5발이 10발이 되고, 10발이 15발이 되면서 점점 실제 훈련과 거의 같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수 있게 됐죠.”
총기류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통제 때문에 훈련을 못하는 날도 제법 생긴다. 반효진 선수는 실전 훈련과 같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사격 훈련이 없는 날에도 빠짐없이 사격장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실전만큼 지쳐요. 힘들어요. 그래서 올림픽 끝나고 나서
이제 이 모든 걸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 때문에 고개를 뒤로 젖혔던 것 같아요. 아, 드디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