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3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 진출한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에는 개인종합 1위에 빛나는 올라운더 신솔이 선수가 있었다.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5관왕을 석권하고 2025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 중인 신솔이 선수. 앞으로 더 활짝 꽃피울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힘들지만 매력적인 기계체조의 세계로
으레 많은 기계체조(이하 ‘체조’) 선수가 그렇듯 신솔이 선수 역시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체조에 입문했다. 그가 다녔던 충주남산초등학교에서는 유소년 체조 선수를 육성하고 있었는데, 신솔이 선수의 빠른 발과 유연성을 눈여겨본 담임선생님이 체조를 권했던 것이다. 체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때, 신솔이 선수는 호기심에 이끌려 평균대 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해 보니 체조는 결코 만만한 종목이 아니었다. 신솔이 선수는 어린 시절에는 운동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한 3학년 때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길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1년만 더 해 보자고 설득해서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초등학교 6년 내내 운동을 하게 됐어요. 정말 6학년까지만 운동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체조를 하겠노라 다짐했던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선수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지금은 선발전을 통해 뽑고 있지만 신솔이 선수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체조 청소년 국가대표는 발탁제였다. 국가대표로 활동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신솔이 선수는 기쁨보다는 무서움이 컸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묵직했던 탓이다. ‘아직 어린데 내가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운동은 너무 힘들지않을까?’라는 걱정들이 자랑스러움을 앞섰다.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신솔이 선수는 이른 나이부터 슬럼프를 겪었다.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운동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계속 해 오던 습관이 있어 매일 관성처럼 훈련을 이어 나가면서도 표정 없이 몸만 움직였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런 신솔이 선수를 잡아 준 것은 같은 국가대표팀 선수들이었다.
“선수촌에서 같이 훈련하던 언니들이 많이 도와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일 있냐고 걱정도 해주고, 시합 끝나고 휴가 받으면 어디 놀러 가자고 기분도 띄워 주고, 지금 조금만 더 같이 노력하면 된다고 다독여주면서 기운을 넣어 줬어요. 결국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언니들한테 격려 받으면서 하루 이틀 견디다 보니 다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체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 운동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나날. 이렇게 다양한 고비를 넘기고 성인이 된 후로는 한번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없다. 신솔이 선수는 누가 시켜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 그에게는 체조가 너무 매력적이고, 평균대를 걷고 도마를 넘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 "체조는 몸의 탄력이나 균형 감각 같은 타고난 재능이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해요. 엄청난 노력으로 재능을 뛰어넘는 운동도 있겠지만, 체조는 그게 조금 더 어려운 종목이지 않나 싶거든요. 훈련은 힘들지만, 또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없는 운동이란 점이 체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올림픽 출전 선수’ 전 그 말이 조금 쑥스러워요
"파리올림픽 하나로 언니들이랑 더 끈끈해진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단체 시합이었으니 합이 잘 맞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단합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2023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52회 기계체조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은 24개 참가국 중 11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단체전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4년, 파리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해 쟁쟁한 체조 강국들과 함께 실력을 겨뤘다.
비록 예선 12위로 결선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36년만의 올림픽 행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성적보다도 출전에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저는 파리올림픽 자체는 ‘마음 놓고 하자’라며 편하게 치렀어요. 오히려 올림픽보다 올림픽 행 티켓을 따는 과정이 더 힘들었어요. 여태까지 계속해 왔으니 훈련이 힘든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 괜찮았는데, ‘무조건 파리행
티켓을 따야 한다’라는 정신적 부담이 컸거든요.” 올림픽 출전권 확보라는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파리올림픽에 임했지만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은 욕심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행 티켓이 걸려 있었던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에서 평균대 연기 중 실수가 생긴 건 아직도 신솔이 선수에게 뼈아픈 아쉬움이다. 그는 자신이 유독 세계무대에만 서면 실수가 생긴다며, 그 이유를 기구 적응 기간에서 찾았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구 적응을 잘 못해요. 기구 규격은 물론 전 세계가 동일하지만 기구 탄력 등이 미세하게 다른데 저는 그 감각이 조금 예민한 것 같아요. 남들은 2~3일이면 기구에 적응한다고 했을 때 저는 한 5일 정도 걸린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이번 파리올림픽을 준비할 때는 기구 탓하지 말자고 세뇌하듯 다짐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기구 적응 기간을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생애 첫 올림픽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고,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 주었기에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막내 신솔이 선수를 비롯해 이다영, 여서정, 이윤서, 엄도현 선수까지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은 모두 홀가분하고 뿌듯한 얼굴로 파리 무대를 내려왔다. 한 선수의 연기가 끝날 때마다 손뼉을 마주치고 포옹하며 격려해 주었던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의 돈독한 우정과 꺾이지 않는 도전이야말로 메달보다 값진 결과물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는 내가 이 대회에 나가도 될까 하는 마음이 컸고요, 끝난 뒤에는 ‘파리올림픽 선수’라는 기대감이 생겨서 괜히 더 잘 해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좀 생겼어요. 주변에서 ‘너 올림픽 갔다 왔잖아’라고 말할 때, 저는 그 말이 조금 쑥스러워요. 이런 마음은 앞으로 제가 시합을 뛸 때마다 계속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전국체전에서 부담을 이겨 낸 것처럼 계속 극복하면서 나아가면 뿌듯할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