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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4년 11월 스포츠히어로
매트 위의 올라운더
기계체조 국가대표
신솔이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3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 진출한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에는 개인종합 1위에 빛나는 올라운더 신솔이 선수가 있었다.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5관왕을 석권하고 2025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 중인 신솔이 선수. 앞으로 더 활짝 꽃피울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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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매력적인 기계체조의 세계로

으레 많은 기계체조(이하 ‘체조’) 선수가 그렇듯 신솔이 선수 역시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체조에 입문했다. 그가 다녔던 충주남산초등학교에서는 유소년 체조 선수를 육성하고 있었는데, 신솔이 선수의 빠른 발과 유연성을 눈여겨본 담임선생님이 체조를 권했던 것이다. 체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때, 신솔이 선수는 호기심에 이끌려 평균대 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해 보니 체조는 결코 만만한 종목이 아니었다. 신솔이 선수는 어린 시절에는 운동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한 3학년 때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길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1년만 더 해 보자고 설득해서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초등학교 6년 내내 운동을 하게 됐어요. 정말 6학년까지만 운동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체조를 하겠노라 다짐했던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선수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지금은 선발전을 통해 뽑고 있지만 신솔이 선수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체조 청소년 국가대표는 발탁제였다. 국가대표로 활동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신솔이 선수는 기쁨보다는 무서움이 컸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묵직했던 탓이다. ‘아직 어린데 내가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운동은 너무 힘들지않을까?’라는 걱정들이 자랑스러움을 앞섰다.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신솔이 선수는 이른 나이부터 슬럼프를 겪었다.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운동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계속 해 오던 습관이 있어 매일 관성처럼 훈련을 이어 나가면서도 표정 없이 몸만 움직였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런 신솔이 선수를 잡아 준 것은 같은 국가대표팀 선수들이었다.
“선수촌에서 같이 훈련하던 언니들이 많이 도와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일 있냐고 걱정도 해주고, 시합 끝나고 휴가 받으면 어디 놀러 가자고 기분도 띄워 주고, 지금 조금만 더 같이 노력하면 된다고 다독여주면서 기운을 넣어 줬어요. 결국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언니들한테 격려 받으면서 하루 이틀 견디다 보니 다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체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 운동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나날. 이렇게 다양한 고비를 넘기고 성인이 된 후로는 한번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없다. 신솔이 선수는 누가 시켜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 그에게는 체조가 너무 매력적이고, 평균대를 걷고 도마를 넘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 "체조는 몸의 탄력이나 균형 감각 같은 타고난 재능이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해요. 엄청난 노력으로 재능을 뛰어넘는 운동도 있겠지만, 체조는 그게 조금 더 어려운 종목이지 않나 싶거든요. 훈련은 힘들지만, 또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없는 운동이란 점이 체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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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출전 선수’ 전 그 말이 조금 쑥스러워요

"파리올림픽 하나로 언니들이랑 더 끈끈해진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단체 시합이었으니 합이 잘 맞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단합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2023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52회 기계체조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은 24개 참가국 중 11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단체전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4년, 파리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해 쟁쟁한 체조 강국들과 함께 실력을 겨뤘다.
비록 예선 12위로 결선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36년만의 올림픽 행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성적보다도 출전에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저는 파리올림픽 자체는 ‘마음 놓고 하자’라며 편하게 치렀어요. 오히려 올림픽보다 올림픽 행 티켓을 따는 과정이 더 힘들었어요. 여태까지 계속해 왔으니 훈련이 힘든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서 괜찮았는데, ‘무조건 파리행
티켓을 따야 한다’라는 정신적 부담이 컸거든요.” 올림픽 출전권 확보라는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파리올림픽에 임했지만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은 욕심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행 티켓이 걸려 있었던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에서 평균대 연기 중 실수가 생긴 건 아직도 신솔이 선수에게 뼈아픈 아쉬움이다. 그는 자신이 유독 세계무대에만 서면 실수가 생긴다며, 그 이유를 기구 적응 기간에서 찾았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구 적응을 잘 못해요. 기구 규격은 물론 전 세계가 동일하지만 기구 탄력 등이 미세하게 다른데 저는 그 감각이 조금 예민한 것 같아요. 남들은 2~3일이면 기구에 적응한다고 했을 때 저는 한 5일 정도 걸린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이번 파리올림픽을 준비할 때는 기구 탓하지 말자고 세뇌하듯 다짐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기구 적응 기간을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생애 첫 올림픽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고,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 주었기에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막내 신솔이 선수를 비롯해 이다영, 여서정, 이윤서, 엄도현 선수까지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은 모두 홀가분하고 뿌듯한 얼굴로 파리 무대를 내려왔다. 한 선수의 연기가 끝날 때마다 손뼉을 마주치고 포옹하며 격려해 주었던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의 돈독한 우정과 꺾이지 않는 도전이야말로 메달보다 값진 결과물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는 내가 이 대회에 나가도 될까 하는 마음이 컸고요, 끝난 뒤에는 ‘파리올림픽 선수’라는 기대감이 생겨서 괜히 더 잘 해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좀 생겼어요. 주변에서 ‘너 올림픽 갔다 왔잖아’라고 말할 때, 저는 그 말이 조금 쑥스러워요. 이런 마음은 앞으로 제가 시합을 뛸 때마다 계속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전국체전에서 부담을 이겨 낸 것처럼 계속 극복하면서 나아가면 뿌듯할 거라고 생각해요.”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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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운더 체조 요정

여자 체조 세부 종목은 도마, 이단평행봉, 평균대, 마루운동으로 나뉜다. 기구에 따라 펼칠 수 있는 연기와 기술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체조 선수마다 특기인 운동이 있기 마련인데, 모든 종목을 골고루 안정감 있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신솔이 선수의 강점이다. “제일 좋아하는 건 이단평행봉이에요. 할 수 있는 기술도 많고 기술을 시도했을 때 더 멋져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선수들처럼 특출나게 잘하는 종목이 없어요. 사실 저도 한 가지를 특출나게 잘하고 싶은데 그게 많이 어려워요. 네 가지 종목을 안정적으로 해내는 게 제 특기라면 특기인데, 그렇다고 완벽하게 잘하는 건 아니고 무난하게 50%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신솔이 선수는 특기 종목이 따로 없다며 겸양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10월 진행된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당당히 5관왕을 차지하며 무난한 실력이 아닌 월등한 기량을 보여 주었다. 사실상 이단평행봉을 제외한 여자일반부 전 종목을 석권한 셈이다. 2025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하며 실력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여러 경기 중에서도 신솔이 선수가 유독 돋보이는 종목은 단연 평균대다. 평균대는 90초라는 제한 시간 안에 좁고 긴 평균대(높이 125cm, 폭 10cm, 길이 500cm) 위에서 공중돌기 같은 아크로바틱 요소와 점프나 턴과 같은 댄스 요소를 각 3개씩 보여 줘야 하는 종목이다. 공중돌기나 점프 시도 후 착지를 잘못하면 발이 미끄러져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는
‘평균대는 운발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데, 신솔이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어릴 적에는 평균대 위에서 추락하는 것이 무서웠지만 숱한 훈련 끝에 어떻게 하면 떨어지지 않는지 감각이 생겼다고.
“약간 긴장이 돼야 몸 상태 가 더 좋아지기 때문에 굳이 긴장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아요. 경기장에서 시도 직전에만 긴장하지 않으면 된다고 보거든요. 체조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찌뿌둥할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럴 때는 몸 쓰는 게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수율이 높은 것 같아요. 몸이 안 좋아도 다칠 수 있고 몸이 너무 좋아도 흥분해서 다칠 수 있어요. 그날그날 몸 상태에 따라 기술의 성공 여부가 달라지니까 내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집중해서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고난도 기술과 무용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흡사 예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체조. 몸의 탄력과 유연성이 중요한 종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의 은퇴가 이른 편이다. 신솔이 선수도 2025년부터는 선배가 되어 막내 자리를 내어 준다. 그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국가대표로서, 체조선수로서 남고 싶은 바람이다. “아무래도 저는 운동하느라 상대적으로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으니 엄마는 제 미래를 위해서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가 붙잡아 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지금 목표는 25살까지 선수촌에 남아 있는 거고요, 적어도 서른 살까지는 체조를 계속하고 싶어요.”
힘든 선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주위의 응원과 격려였따. 만약 신솔이 선수가 초등학교 때 체조를 그만두었더라면,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대한민국 체조계를 빛낼 보석 하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훈련도, 체중 조절도, 세계대회도 쉬운 게 하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평행봉과 평균대 위를 즐겁게 날아다니고 하루라도 몸을 풀지 않으면 못 견디는 천상 국가대표 신솔이 선수. 그의 앞에 펼쳐진 수많은 무대와 환호의 시간을 응원한다.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