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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4년 12월 스포츠히어로
빙판 위의 레이서
봅슬레이 국가대표
소재환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봅슬레이 모노봅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썰매 종목에서는 아시아 최초 청소년 금메달리스트가 된 봅슬레이 유망주 소재환 선수. 주니어 시즌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마무리한 그가 시니어 무대를 향한 야심 찬 도약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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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포환 유망주에서 봅슬레이 신동으로

봅슬레이는 ‘스타트’ 순간부터 승부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얼마나 재빨리 썰매를 추진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봅슬레이와 육상은 떼어 놓을 수 없는 형제나 다름없다. 봅슬레이나 스켈레톤 선수 중에서 육상 선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소재환 선수 또한 시작은 육상 세부 종목 중 하나인 투포환이었다. 중학교 시절 내내 육상부원으로서 운동장을 뛰었던 그는 졸업을 앞둔 3학년, 예천 지역에서 개최된 육상 대회장에서 강원도청 봅슬레이팀 송진호 감독으로부터 운동 종목을 바꿔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스키 타는 방법도 모르는 그에게 봅슬레이라니, 낯선 이야기였다.
그러다 문득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 설날 떡국을 먹으며 봅슬레이 경기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때마침 ‘육상을 그만둘까’라는 고민을 하던 차였다. 육상 선수로 살아온 몇 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전혀 다른 종목에 도전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동계 종목으로의 전환이 그에겐 오히려 순조로운 이야기였다.
“봅슬레이는 스타트가 굉장히 폭발적이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투포환을 해왔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투포환은 무거운 걸 던지다 보니까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한데 봅슬레이에서도 그 두 가지가 중요하거든요. 대부분의 투척 선수가 30m 이하의 단거리에서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도 봅슬레이에서 필요한 재능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봅슬레이 선수로의 전향을 결정한 소재환 선수는 가족과 함께 살던 안산을 떠나 평창으로 향했다. 전 세계에 17개밖에 없는 봅슬레이 트랙 중 하나가 바로 평창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의 국가대표를 꿈꾸는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유망주들과 함께 상지대관령고등학교로 진학해 본격적으로 봅슬레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평창에 위치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는 스타트 연습장까지 포함해 총길이 2,018m다. 처음에는 예상을 웃도는 봅슬레이의 빠른 속도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소재한 선수는 6번 구간부터 한 단계씩 코스를 습득하며 봅슬레이라는 새로운 종목에 적응해 나갔다.
그는 난생처음 전체 코스인 1,376m를 완주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첫 시도 중 12번 구간을 지날 때 얘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컨트롤에 미숙했던 탓이었을까, 어느 순간 그가 탄 봅슬레이가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가 천장을 찍고 내려왔다. 순간적인 일어난 사고였고, 평균 시속 130km를 넘나드는 봅슬레이는 돌발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그대로 내달렸다. 다행히 부상은 없었지만 놀란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전체 코스 주행 첫 시도부터 사고를 겪었으니 두 번째 도전에 겁날 법도 하지만, 소재한 선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주행이 끝난 직후에는 좀 무서웠어요. 그래도 두 번째 주행 때 집중해서 타니까 또 박지는 않더라고요. 한 번 겪어봐서 그런지 ‘이렇게 컨트롤하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겠다’ 하는 요령이 생겼어요.” 그렇게 남다른 기지와 재능으로 봅슬레이를 익혀 가던 소재한 선수는 봅슬레이를 시작한 지 채 반년이 되지 않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 국가대표 타이틀을 가슴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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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봅을 지배한 스피드레이서

동계올림픽에서 봅슬레이의 세부 종목은 남자부 2인승과 4인승, 여자부 2인승과 모노봅으로 나뉘지만, 청소년 대회는 오직 모노봅 경기만 진행된다. 모노봅은 1인승 봅슬레이 경기로 2016 릴레함메르청소년올림픽에서 최초로 소개되었다. 2명 혹은 4명의 크루가 역할을 분담하는 기존의 봅슬레이 경기와 달리 모노봅은 한 명의 선수가 163kg에 달하는 썰매를 홀로 밀고, 조종하며 코스를 완주해 내야 한다.
봅슬레이 경기에서 주행 기록을 단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스타트 시간이 기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2~4인승의 경우 선수들은 스타트 구간에서 썰매를 밀다가 파일럿, 푸쉬맨, 브레이크맨의 순서로 썰매에 탑승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6초를 넘기지 않는다.
“썰매에 탑승하는 타이밍은 선수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스타트 구간이 내리막이다 보니까 주력(走力, 달리는 힘)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면 길게 달릴 수 있고, 주력이 부족하면 그만큼 빨리 타야 해요. 길게 달려서 0.01초라도 스타트 기록을 줄일 수 있으면 썰매 유리하죠. 주행하면서 기록을 만회하는 방법도 있지만, 모노봅은 2인승이나 4인승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주행 중 속도를 올려서 시간을 단축하기가 쉽지 않아요.”
소재한 선수는 2023/24 시즌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대한민국 봅슬레이의 희망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2023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오메가 유스 시리즈 3차와 4차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수확한 것을 포함해 2023년 한 해에만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의 성적을 만들어 냈다. 봅슬레이를 배운 지 불과 1년 만의 결과였다. 그의 단단한 실력은 올해 1월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제4회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광휘를 뿜었다.
대회 4일 차,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두 번째 금을 캔 사람은 다름 아닌 모노봅에 출전한 소재환 선수. 동계청소년올림픽 썰매 종목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메달이었으며, 아시아 선수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였기에 그의 성취는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소재환 선수는 사실 달릴 때부터 1위를 조금 예감했다면서 당시 소감을 전했다.
“모노봅은 다른 썰매에 비해 가벼워서 컨트롤을 조금만 잘해도 썰매가 크게 요동치거든요. 그래서 뒤쪽이 많이 흔들리면 ‘내가 진짜 잘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주행을 잘하면 썰매가 흔들리지 않고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달라요. 1차 시기 때 제대로 속도가 붙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나 이번에 좀 잘 탔구나’ 싶었어요.”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 소재한 선수의 1차 시기 기록은 53초 80. 평창 트랙 개인 최고 기록이자 1차 시기에서 2위를 기록한 조나탕 루리미 선수를 무려 1초 가까이 앞선 기록이었다. 봅슬레이는 100분의 1초 단위까지 기록을 측정하기 때문에 1초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은 금메달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섰다는 이야기기 된다. 이어 2차 시기에서는 54초 83으로 전체 2위를 기록, 합계 1분 48초 63으로 여유롭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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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시니어 데뷔를 위하여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2023년부터 이미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합류하게 된 소재환 선수는 현재 선배들의 귀여운 막내로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즐겁게 훈련 중이다. 봅슬레이 시니어 남자부에는 모노봅 경기가 없으므로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차근차근 길을 찾아가고 있다. 정든 모노봅을 그만두고 종목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쉽진 않은지 묻자 소재환 선수는 산뜻하게 웃으며 오히려 더 좋다고 대답했다.
“모노봅은 혼자 출발하고 혼자 내려가고, 심지어 스타트 하우스로 다시 올라올 때도 혼자라 좀 외로워요. 그런데 2인승이나 4인승 봅슬레이는 언제나 팀원이 함께 있으니까 의지할 수도 있고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아서 더 좋습니다."
여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육상 훈련을 중심으로 썰매가 출발할 때 필요한 주력을 높이기 위해 힘쓰는 한편 실내 스타트장 훈련에 매진한다. 겨울이 오면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본격적인 주행 훈련을 시작하는데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선수들이 모두 같은 트랙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어느 종목이든 선수들에게 할당된 주행 훈련 시간이 넉넉하진 않은 편이다.
대회 준비 기간이 아닌 평상시 연습 시기에는 그날그날의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팀 내 역할과 팀원 구성이 매번 다르다. 소재환 선수도 파일럿과 브레이크맨 포지션을 번갈아 훈련받고 있다. 주행이 끝난 후 브레이크를 잡을 때까지는 가만히 썰매에 몸을 맡겨야 하는 브레이크맨과 달리 파일럿은 주행하는 동안 썰매 안쪽 손잡이를 이용해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코스 후반으로 갈수록 자세 잘못하면 썰매가 뒤집어 질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 파일럿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는 브레이크맨보다는 파일럿이 조금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슬며시 귀띔했다.
“브레이크맨보다 파일럿일 때 조금 더 재밌는 것 같지만 제가 어떤 포지션에서 뛰는 게 팀에 더 유리한지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판단하고 정해 주시는 부분이니 저는 그에 맞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연습 때는 매번 다른 파트너와 봅슬레이를 타는데 누구랑 타도 너무 좋아요. 특별히 어떤 사람과 단합이 잘 맞는다기보다는 저를 믿어 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훌륭한 성적으로 청소년 국가대표 기간을 뿌듯하게 마무리한 소재환 선수의 다음 목표는 1년 2개월여 남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이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국가대표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코치진, 선배 선수들과 즐겁게 훈련하고 마침내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지금 그가 꾸는 유일한 꿈이다.
2025년이면 이제 겨우 열아홉, 신기록 수립이나 은퇴 후의 생활 같은 건 소재환 선수에게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가 막연히 바라는 게 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지금처럼 꾸준히 운동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 욕중한 썰매를 힘차게 밀며 약진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잠재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국가대표로서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은 소재환 선수가 앞으로 썰매가 아닌 대한민국 봅슬레이의 미래를 밀어주며 희망찬 금빛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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