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피플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경기인 및 동호회/클럽을 만나보세요.

  • Home
  • S피플
  • 스포츠히어로

스포츠히어로

2025년 1월 스포츠히어로
뉴에이스의 스퍼트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시니어 데뷔 2년 만에 ISU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하며 크리스털 글로브를 수상한 뉴에이스 김길리 선수. 연일 계속되는 경기에도 실력자들과 겨루며 성장한다는 기쁨에 매 순간이 즐겁다. 차세대 쇼트트랙 스타로 발돋음 중인 그가 다가오는 올림픽을 향해 스퍼트를 올린다.
가로바이미지

은반 위의 요정 말고 트랙 위의 걸크러시

김길리 선수와 쇼트트랙의 인연은 조금 귀엽고 엉뚱하게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했던 그는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 보며 적성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 친구의 딸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운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견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빙상장 위를 아름답게 수놓는 피겨 스케이팅을 보고 스케이팅에 관심이 생겼다. 어머니는 곧바로 딸의 마음에 응답해 수업을 등록해 주었고,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김길리 선수는 난생처음 스케이트화를 신게 되었다. 그렇게 빙상장을 다닌 지 한 달, 우아한 피겨 선수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케이팅을 배우던 김길리 선수는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지금 배우는 게 피겨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피겨를 하려면 점프나 스핀 같은 동작을 해야 하는데 제가 배우는 스케이트는 이상하게 점점 자세가 낮아지는 거예요. 저희는 직선 주행을 찍기라고 하는데, 찍기를 배울 때쯤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한테 이거 피겨 맞냐고 물어보니까 쇼트트랙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피겨 스케이팅을 가르치는 곳이 흔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김길리 선수의 집 근처였던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쇼트트랙 강습을 열었고, 어머니는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해당 수업을 등록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길리 선수는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을 알지도 못했다. 빙상장에 다닌 지 불과 한 달, 피겨 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에 늦지 않은 때였지만 그는 쇼트트랙을 선택했다.
“저는 처음부터 스케이트를 잘 탔어요. 재능이 좀 있었나 봐요. 원래는 피겨를 배우고 싶었지만, 쇼트트랙에 금방 흥미를 느껴서 그냥 이대로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었어요. 트랙을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도 빨리 저렇게 타고 싶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그의 사랑스러운 바람은 머지않아 이뤄졌다. 같은 해 출전했던 아마추어 대회에서 곧바로 1등을 차지한 것.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우승했을 때의 짜릿함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김길리 선수는 각종 주니어 대회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남다른 재능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노력이 더해지자 김길리 선수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가로바이미지

어려워서 더 재밌는 시니어 무대

하지만 너무 일찍 재능을 꽃피웠기 때문일까. 김길리 선수의 월등한 실력은 오히려 그의 성장에 독이 되기도 했다. 쇼트트랙은 다른 선수와의 치열한 경쟁이 매력인 종목 중 하나인데,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없다 보니 조금씩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1등만 했던 것이 오히려 싫증을 느끼게 만든 것 같다며, 때때로 쇼트트랙을 멀리하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중간에 몇 번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부모님은 ‘자기 재능을 찾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네 재능을 믿고, 기왕 시작한 거 한 번 끝을 봐’라고 하시며 응원해 주셨어요. 부모님은 제가 스케이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아셨던 것 같아요." 딸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부모님은 김길리 선수가 잠시 운동을 쉬더라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길리 선수가 빙상장을 그리워할 때쯤이면 가볍게 툭, ‘스케이트 탈래?’ 라며 다시 운동을 권했다. 그래서 김길리 선수는 주니어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즐겁다고 이야기 한다. 매 시합마다 새로운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2023/24 시즌으로 국제 시니어 무대에 발을 내디딘 그는 이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 세계 선수들과 어깨를 견주며 트랙을 달린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맏언니 최민정 선수와 이탈리아의 아리아타 폰타나 선수는 김길리 선수가 롤모델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두 선배를 비롯한 수많은 선수와 함께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레이스를 겪으며 새로운 배움을 얻고, 그는 매일매일 한 뼘 더 성장해 나가는 중이다.
선수 사진
가로바이미지

흐름을 만드는 에이스의 레이스

간혹 쇼트트랙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레이스 도중 넘어진 선수가 멀리 튕겨 나가 경기장 안전 매트에 강하게 부딪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원심력 때문이다.
짧은 트랙을 빠르게 도는 동안 선수에게 강한 완성력이 발생하게 되고, 쇼트트랙 선수들은 이 완성력에 의해 외곽으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버티며 결승선을 향해 질주한다. 몸을 숙인 채 달리느라 호흡이 가빠지기 십상인데, 그 와중에 원심력으로 인한 부하까지 견뎌야 하니 체력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김길리 선수는 쇼트트랙 세부 종목인 500m, 1,000m, 1500m에서 모두 활약 중이다. 경기가 연달아 이어지는 만큼 몸에 무리는 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 묻자 그는 스스로 회복을 잘하는 편인 것 같다고 전하며 우스갯소리로 "젊음이 비결"이라고 답했다.
"저는 1,500m 경기가 제일 재밌고 자신 있어요. 1,500m는 레이스가 기니까 체력이 받쳐 줘야 하는데, 저는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초반에 빨리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500m보다 경기 흐름을 파악하면서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긴 레이스가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김길리 선수는 짧은 트랙 안에서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을 쇼트트랙의 매력으로 꼽으며 다른 선수를 추월할 때 가장 재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아웃코스를 활용한 추월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선두일 때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남은 바퀴 수와 자신의 체력 안배 등을 고려해 힘을 써야 할 타이밍인지 비축해야 하는 타이밍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전략적으로 레이스를 이어 나간다.
"추월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쭈뼛쭈뼛하다가는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저를 믿고 자신감 있게 치고 나가는 게 요령인 것 같습니다.
가로바이미지

내 손에 쥐어진 트로피의 무게

그동안 치렀던 시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엇인지 문자 김길리 선수는 2024년 3월에 치렀던 생애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떠올렸다. 그는 1,500m 경기에서 금메달, 1,0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주니어 때는 제가 완전한 컨디션으로 탔던 대회가 몇 안 돼요. 그래서 시니어 무대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땄을 때 진짜 기분이 너무 좋았고 날아갈 것 같았어요."
2024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뿐만 아니라 2023/24 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인 김길리 선수는 랭킹포인트 총 1,211점으로 종합 1위를 달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크리스털 글로브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크리스털 글로브는 ISU에서 랭킹 종합 1위에게 수여하는 트로피로, 2023/24 시즌에는 박지원 선수와 김길리 선수가 나란히 수상해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우수성을 만방에 떨쳤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 중에는 제가 최초인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 영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한 마음도 컸어요. 월드컵 4차 대회 때까지 계속 1등을 유지하는 상황이어서 '이번에는 한 번 노려봐도 되겠다, 할 만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2024/25 시즌은 김길리 선수에게 무척 바쁜 시기다. 2024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이어지는 ISU 쇼트트랙 월드투어 사이사이에 제106회 전국동계체육대회와 2025 토리노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까지 겹쳐 출전 일정이 빼곡하다.
ISU 쇼트트랙 월드투어 4차 대회까지 치러진 현재 김길리 선수는 종합 4위다.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동기간 예정된 5차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기 때문에 6차 대회에서의 성적만으로 1위 탈환을 노려야 된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보여 준 그의 거침없는 금빛 질주는 다시 포디움에 올라선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제 겨우 22세. 쇼트트랙 유망주에서 뉴에이스로 발돋움한 김길리 선수의 앞길엔 수많은 가능성의 미래가 펼쳐져 있다. 당장 코앞의 목표는 2025 하얼빈아시안게임 단체전과 개인전 금메달, 나아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을 숨 가쁘게 마무리하고 나면 한 달 정도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다시 힘차게 달려 나갈 예정이다. "저는 스케이트를 가능한 한 오래 타고 싶어요. 그래서 올림픽을 최대한 많이 나가 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올림픽에 네 번까지 출전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