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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5년 2월 스포츠히어로
설원의 히어로
스노보드 국가대표
마준호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2025 토리노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이하 '토리노대회")에서 수많은 빙상 메달리스트가 배출되는 동안 슬로프를 날렵하게 가로지르며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건 눈밭의 히어로가 있다. 바로 스노보드 알파인 마준호 선수.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국가대표로 우뚝 선 그가 쟁쟁한 실력의 선배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스노보드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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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라선 국가대표의 자리

많은 운동선수가 그러했듯 마준호 선수도 시작은 취미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로 오게 된 그는 평창 면온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스노보드를 접했다. 학교에서 보드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심심해서 형들을 따라 보드부에 놀러 갔다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도 대회에서 입상도 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한번 횡성으로 연고를 옮겼고, 설상 종목 선수를 활발히 육성 중인 둔내에서 쭉 성장하며 전문 선수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마준호 선수가 본격적으로 전문 선수로 진로를 결정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늘 그랬듯 습관처럼 스노보드를 타던 어느 날, 문득 그의 가슴 속에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이 움텄다.
“그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이 다 보드를 타고 있으니까, 나도 스노보드부에 가입되어 있으니까, 때마침 학생 선수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대회에도 나가고 시도 뛴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 뭔가 좀 더 잘하고 싶다.',’대회에서 1등 하고 싶다‘ 라는 열망이 강력하게 생겨서, 그때부터 목표를 세우고 체계적으로 운동하면서 스노보드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3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하는 동안 꾸준히 운동에 매진했음에도 그는 오랫동안 상비군에 머물러야 했다. 대학교 3학년을 목전에 둔 2022/23 시즌에 찾아 온 슬림프 아닌 슬럼프는 그의 선수 생활을 더욱 힘겹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운동에 대한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드가 너무 안 타지는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데, 그래서 저는 좀 내려놨어요. 아예 운동을 안 하고 시합도 안 나가고 그랬던 건 아니고요, 조급함을 좀 덜어 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먹었어요. 당시에는 그냥 ’못하면 뭐 어때‘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운동선수는 1등을 바라보면서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강박들에서 벗어나게 되니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과도한 긴장과 압박은 유연한 몸도 굳어 버리게 하고 영민한 판단도 흐려지게 만든다. 어린 시절 마냥 눈밭을 즐겼을 때처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스노보드에 오르니 불필요한 힘이 빠지면서 훨씬 자유롭게 슬로프를 누비게 된 것이 아닐까? 지난 2024년, 마준호 선수는 드디어 스노보드 알파인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상비군이 된 지 5년 만의 결과였다. 국가대표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했을 때 '드디어 됐구나'라는 뿌듯함에 가슴이 한껏 벅차올랐다.
"선수로서 최종 목적지가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한다면, 국가대표가 되는 일은 그 목표를 향한 큰 한 걸음이기 때문에 '마침내 됐다!’라는 기쁨에 일주일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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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연습 또 연습

스노보드 알파인은 평행회전과 평행대회전으로 나뉜다.
두 경기 모두 주행 코스에 평행하게 설치된 기문을 차례로 통과해 결승점 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각 기문 간 거리가 평행회전은 10~14m, 평행대회전은 20~25m이라는 차이가 있다. 두 명의 선수가 동시 출발하며 1차전과 2차전 기록을 합산하여 빠른 순서대로 순위가 결정된다.
야외에서 경기가 펼쳐지는 특성상 선수들은 많은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 평행회전 및 평행대회전 코스는 세계 대회 규정에 따라 대회가 열리는 국가의 코치들이 설치하는데, 제시된 범위 안에서 코스 길이나 기문 간의 거리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치하는 사람에 따라서, 슬로프 상태(설질, 雪質)나 당일 날씨에 따라서 코스의 난도가 매번 다르다. 어떤 경기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최고의 기량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숱한 연습을 통해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
"특기요? 딱히 생각해 본 적 없기는 한데·?? 실수가 생겼을 때 리커버리(회복) 하는 게 좀 빠른 것 같아요. 연습할 때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리커버리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시합 때도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바로 바로 해답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회전할 때 보드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고 떨린다거나, 보드 앞이나 뒤쪽 엣지가 눈에서 빠져나와 헛돈다거나 하는 자잘한 실수는 안정적인 경기 운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실수를 바로바로 잡지 못하면 결국 넘어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회복해 다음 턴을 이어갈지 판단하는 것이 경기력을 좌우한다. 마준호 선수는 보통 평행회전과 평행대회전 두 종목 모두 고르게 훈련해 왔는데, 최근에는 평행대회전 연습에 더 주력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는 평행회전을 더 잘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평행대회전 기록이 훨씬 좋아져 자신감이 한껏 붙었다고.
비슷한 듯 다른 두 종목을 소화할 때 선수 입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마준호 선수는 아무래도 ‘리듬’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행대회전은 평행회전에 비해 보드 길이도 길고, 기문 간의 거리도 멀어서 다음 턴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할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평행회전은 기문 사이 거리가 짧으니까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는 주행 중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많다'라고 담담히 대답했지만, 사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약 500m의 코스를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내외다. 계산해 보면 각 기문을 통과할 때 선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1~2초 남짓인 셈이다. 마준호 선수를 비롯한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가 우리가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을 쪼개고 쪼개어 메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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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준호가 써 내려가는 각본 없는 드라마

2025 토리노대회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 준결승전. 마준호 선수는 불가리아의 알렉산더 크라슈니아크 선수를 0.6초 차로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쉽게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박빙의 승부였다. 마준호 선수는 피니시 라인에서 온 몸을 던졌다.
"처음에는 진 줄 알았어요. 저희는 손을 먼저 뻗어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데 그때 팔을 최대한 안 뻗으면 질 것 같은 거예요. 팔을 뻗느라 넘어지면서 들어와서 결과를 몰랐는데 나중에 같은 동료 형이 이겼다고 얘기해 줘서 소리를 엄청 질렀죠."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경기를 치른 그는 끝내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목에 걸 수 있었다. 2025 토리노대회 설상 종목에서 건져 올린 유일한 메달이었다.
"저희 종목은 멘탈이 7~80%라고 생각해요. 제가 긴장을 굉장히 많이 하는 타입이었는데 작년부터는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작년에 대회 일정이 타이트하게 잡히는 바람에 코치도 동료도 없이 저 혼자 유러피안컵을 돌았거든요.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어요. 너무 바쁘고 신경 쓸 것도 많다 보니까 오히려 성적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좀 더 편하게 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마침내 꿈을 이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슬럼프에 빠졌던 선수가 메달리스트가 되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만들어 내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며 사랑받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준호 선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수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해외 원정 대회에서 메달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주니어 선수로서 마지막 대회였던 2021/22 시즌 FIS 주니어 월드 챔피언십은 그에게 어떤 대회보다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노보드 알파인은 날씨나 슬로프 상태에 따라 때때로 각각 코스의 난도 차이가 클 때가 있는데 하필 그날이 그랬다. 예선 성적이 높은 순으로 코스를 선택하기 때문에 예선 5위로 결선에 올라 4위 선수와 맞붙게 된 마준호 선수는 도리 없이 불리한 코스를 배정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눈과 비가 번갈아 올 정도로 기상 상태도 나빴다. 악조건 속에서 메달은 바라지도 못한 채 1차전을 치렀는데 웬걸, 성적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해 볼 만하겠다'라고 생각을 바꾼 그는 끝내 동메달을 손에 쥐었다.
"주니어월드챔피언십 메달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가 얼마 없어요. 맨 처음이 한참 선배님이신 김용현 선수(2009, 평행회전 금메달)고, 그 다음에 이상호 선수, 정혜림 선수, 장서희 선수 이렇게 갖고 있어요. 그리고 주니어 대회는 이제 더는 뛸 수가 없는 시합이잖아요. 한국에 귀한 메달이고, 제 생에 마지막 주니어 시합에서 메달을 획득하게 돼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연락하신 거예요? 저보다 더 훌륭한 선배님들 많으신데.“
마준호 선수와 인터뷰를 시작할 때 그가 건넨 첫 질문이었다. 전국동계체육대회 1위를 거머쥐어도 세계대회에서 포디움에 올라도 그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여기는지 멋쩍게 웃었다.
마준호 선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지산포레스트리조트 스키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설원을 가르며 유려하게 내려오는 마준호 선수를 지켜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속삭였다. '와, 내가 마준호가 연습하는 걸 보게 되다니.' 그들의 수군거림에는 마준호 선수의 활강을 실제로 목격한 것에 대한 감격이 잔뜩 묻어 있었다.
마준호 선수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니 그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국내외 스노보드 대회를 누비며 한 단계 한 단계 실력을 쌓아 온 기간만큼 그의 노력과 행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겸손한 태도로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제 그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을 목표로 다시 한번 훈련에 정진한다. 국가대표에 이르러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얻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노력해 온 마준호 선수, 그가 또다시 만들어 나갈 드라마틱한 무대를 기대해 본다.“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