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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5년 4월 스포츠히어로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증명된 에이스
근대5종 국가대표
성승민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최초의 근대5종 여자 메달리스트가 된 성승민 선수. 근대5종이 전에 없던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 지금, '기대주'에서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그는 또 한 번의 증명을 향해 묵묵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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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 좋았던 소녀, 근대5종 기대주로 떠오르다

오후 4시. 진천선수촌 여자역도장에 14명의 선수가 모였다. 대한민국 근대5종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펜싱 훈련을 위해 모인 선수들은 이내 동그랗게 서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코치의 구령에 맞춰 준비 운동을 하는 선수들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노란 머리의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2024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근대5종 역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안겨준 성승민 선수다.
펜싱, 수영, 육상, 사격, 그리고 지금은 장애물 경기로 대체된 승마까지, 다섯 종목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근대5종 선수들은 보통 한 종목에서 발굴된다. 성승민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수영으로 운동을 시작한 그는 대구체육중학교에 진학한 뒤, 부모님과 교사의 권유로 근대5종에 도전하게 되었다.
"수영을 시작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진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 뛰어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랬는지, 선생님께서 제가 육상을 잘한다고 여기셨나 봐요. 부모님께서도 ‘수영을 조금 못해도 육상을 잘하면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는지 자꾸 근대5종을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하기 싫다고 울었어요(웃음). 같이 수영하던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친구들과의 이별은 아쉬웠지만,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성승민 선수는 어른들의 권유 끝에 결국 근대5종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 선택은 곧바로 빛을 발했다. 근대5종을 시작하자마자 전국소년체전 정상에 오르며 기대주로 떠올랐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하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성승민 선수는 "근대5종 중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늘 "레이저 런"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고교 시절 레이저 런만으로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2위에 오르기도 했을 만큼 강점을 보였다.
"승마는 말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펜싱은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잖아요. 그래서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수영, 육상, 사격은 개인 종목이라 비교적 변수도 없는 편이고, 제가 훈련한 만큼 기록이 나와요. 그게 짜릿하고 재밌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성승민 선수는 고등학교 3학년, 국가대표가 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은 출발이었기에 말과 친해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승마는 국가대표로서 세계 무대에 서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성승민 선수의 해법은 단 하나,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말 안장을 직접 얹어야 하는데, 처음엔 말이 무서워서 그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보다 두세 번 더 말을 타면서 승마 기술을 연마하고 말과 친해지려 노력했죠. 코치님께 집중 훈련을 받기도 했고요. 같이 운동한 언니, 오빠들의 도움도 정말 컸어요. 처음으로 낙마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는데, 정말 아프고 무서웠거든요. 심지어 그날 한 번 더 떨어졌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때 언니들이 많이 위로해줬어요. 자신들도 다 그랬다면서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내일부터 더 열심히 해보자고 다독여줬어요. 이런 작은 응원들이 쌓여 큰 힘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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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주에서 에이스로

근대5종은 올림픽의 모토인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종목이다. 다섯 가지 종목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최상의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선수를 가리기 위한 시험 무대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떨어지는 체력,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변수 때문에 '평정심'은 근대5종 선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승민 선수도 "근대5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중간에 실수하더라도 다음 종목에서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실수에 낙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자신은 훈련 중 실수가 나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엄청 투덜거린다"라고 고백하며 웃었다. 그렇다면 성승민 선수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을까?
"저는 훈련이 잘 안 되면 짜증 내거나 화를 내기도 해요. '투덜댈 거 다 투덜대면서 열심히 하는 선수'랄까요(웃음). 그런데 일기를 쓰면 마음이 좀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운동일지와 개인적인 일기를 따로 쓰는데요. 운동일지는 훈련에 대한 걸 쓴다면, 일기는 오늘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록하면서 제 마음을 돌아봐요. 만족스러웠던 날에는 오늘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기도 하고요. 내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되새기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근대5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다른 종목에서 만회할 수 있으니 한 번 실수에 낙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또 그 감정을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간 성승민 선수는 차근차근 자신을 증명해 나갔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을 시작으로, 2022 알렉산드리아세계선수권 단체전 은메달, 2024 정저우세계선수권에서는 단체전 은메달과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개인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올림픽 데뷔 무대였던 2024 파리올림픽, 1만 5천여 관중이 가득 메운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근대5종 결승전에서 성승민 선수는 헝가리, 프랑스 선수에 이어 레이저 런 결승선을 세 번째로 통과하며 쓰러졌다. 이후 8번째로 들어온 근대5종의 맏언니 김선우 선수가 "뭐해, 일어나! 빨리 즐겨!"라고 말하며 성승민 선수를 다독여주자 그제야 일어나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며 대한민국 최초 근대5종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순간을 즐겼다.
"선우 언니가 저를 안아주고 일으켜주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울리는 것 같아요.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디에나 쉽게 붙는 게 아니잖아요. 당시엔 어안이 벙벙했는데,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합계 1,441점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여자 선수 최초로 올림픽 포디움에 오른 그는, 동메달보다 더 환한 철인의 미소로 대한민국 근대5종의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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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을 맞이한 근대5종, 에이스의 새로운 도전

2020 도쿄올림픽 근대5종에서는 승마 종목에서 배정받은 말이 말을 듣지 않아 선두를 달리던 선수가 실격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승마 실력보다도 어떤 말을 배정받느냐에 따라 성적이 좌우된다는 '복불복'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2024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근대5종에서 승마는 제외됐다. 그 자리를 대신한 종목이 바로 '장애물 경기'다. 이는 근대5종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12 스톡홀름올림픽 이후 가장 큰 변화다.
장애물 경기는 60~70m 거리 안에 설치된 8개의 장애물을 빠르게 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수들은 승마와는 전혀 다른 장애물 경기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고, 지도자들 역시 선수만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성진 감독은 "파리올림픽이 끝난 직후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라고 털어놨다.
"저도 대표 선수 출신이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종목을 지도해야 했어요. 결국 영상이나 외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존의 펜싱처럼 훈련 방법과 논문이 마련되어있는 종목과는 달랐죠. 장애물 경기는 '닌자 워리어'에서 파생된 형태인데, 지금 근대5종 장애물 경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과는 차이가 컸어요.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이 있었고요."
훈련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훈련하던 대표팀은 승마 종목이 제외되며 진천선수촌으로 입촌할 수 있게 됐다. 아직은 전용 훈련장이 없어 여자역도장 공간을 양해받아 사용하는 중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대표팀은 지난 2월 이집트에서 열린 근대5종 제1차 월드컵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국가대표 코치 출신의 장애물 경기 전문가를 초빙해 강습회를 열고, 훈련 방법과 경기 방법을 영상으로 제작해 배포하는 등 연맹 차원에서 선수와 지도자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아직은 장애물 경기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고 이에 따른 부상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제2차 월드컵 대회에는 출전해 경기 감각을 익히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성승민 선수 역시 장애물 경기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에 매진 중이다. 지난해 8월까지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승마훈련에 집중했던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뒤늦게 장애물 경기 훈련에 돌입했다.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다른 선수들은 제가 올림픽 준비를 하던 동안 장애물 훈련을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저보다 앞서 있는 부분이 있죠. 그래도 상체 근육을 보완하려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있고, 하루하루 감을 익혀가는 중이에요."
승마와 펜싱도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성승민 선수는 매일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근대5종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전국체전과 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에 먼저 집중하고 싶다고 밝힌 그의 목표는 좋은 성적보다도, 근대5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성승민 선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웅태 오빠가 메달을 따면서 근대5종이 많이 알려졌잖아요. 작년에 제가 파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조금 더 주목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근대5종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세요.“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