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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5년 5월 스포츠히어로
준비된 신스틸러
펜싱 국가대표
도경동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거침없었고, 날카로웠다.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라는 금자탑 앞에서 도경동 선수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쳤고,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혜성처럼 등장한 히어로가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한 끝에 기회를 잡은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가 지닌 가장 큰 무기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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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시간을 증명한 28초

"완벽합니다, 도경동! 5대 0으로 마무리합니다!"
2024년 8월 1일 새벽 4시를 향하는 시각 평소 같았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그날 대한민국 국민은 TV 앞에 모여 환호를 질렀다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결승전, 도경동 선수가 헝가리의 라브 크리스티안 선수를 상대로 연속 5점을 따내며 팽팽했던 경기 흐름을 순식간에 가져온 것이다. 후보선수였던 도경동 선수는 결승전 전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던 선수였다 ‘대한민국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가 목전에 놓인 중요한 경기, 6라운드 점수는 30대 29. 단 1점 차로 쫓기는 7라운드 피스트에 구본길 선수 대신 오른 도경동 선수를 보며 몇몇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졸이며 두 손을 꼭 맞잡아야 했다. 그러나 7라운드 시작 3초 만에 선취점을 따낸 도경동 선수는 이후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연속 5점을 획득했다. 우려가 환호로 바뀌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28초. 6라운드까지 30대 29였던 점수는 35대 29까지 벌어졌고, 대한민국은 최종 45대 41이라는 스코어로 금메달을 따내며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
결승전 이후 도경동 선수를 향한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7라운드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고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온 도경동 선수는 2024 파리올림픽 최고의 다크호스, 비밀병기, 신스틸러(scene stealer)로 불리며 ‘도경금(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오상욱, 구본길, 박상원 등 다른 ‘어펜저스’ 선수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인지도였지만, 단 28초 만에 대한민국 펜싱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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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호스를 만든 믿음

2024 파리 올림픽은 도경동 선수의 올림픽 데뷔 무대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 3연속 우승이 걸린 단체전 결승전. 이 타이틀이 부담이진 않았을까? 도경동 선수는 오히려 ‘경기에 오르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경기장에서 몸을 풀며 형들이 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얼른 시합에 나가고 싶었어요. 결승전에서 제 출전이 결정됐을 때 형들도, 코치님들도 제가 들어간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고 저를 믿는다는 걸 느껴서 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경기에 들어가기 전 상욱이 형한테 얘기했거든요. 들어가서 상대 선수에게 어떤 기술을 펼칠 건지요. 그랬더니 상욱이 형이 ‘그러면 질 수가 없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생각한 기술을 다 펼치고 나올 수 있었죠."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원우영 코치는 경기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도경동 선수는 한국이 남자 사브르 팀 세계랭킹 1위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탠 능력 있는 선수라 믿고 있었다"라며 "그래도 5대 0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정말 완벽하게 해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도경동 선수는 2024년 1월, 튀니스 그랑프리 단체전 결승전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 헝가리와 맞붙은 결승전 8라운드까지 38대 4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9라운드에서 개인전 우승자인 아론 실라지 선수를 상대로 45대 44로 뒤집은 것. 이 경기에서 도경동 선수는 차세대 어펜저스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으며, 남자 사브르 단체 세계랭킹 1위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랭킹은 올림픽 대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의 활약이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라는 기록에 숨은 열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명승부를 펼친 그였지만, 피스트에서 내려온 뒤에는 경기를 보지 못하고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선수 개인의 최종 목표, ‘단체전 3연패’라는 대한민국 펜싱의 새 역사 앞에서 사실 긴장을 감출 수 없었던 것.
"상욱이 형이 개인전에서 온 힘을 다해 금메달을 땄잖아요.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고 있으면 점수를 잃고, 제가 안 보면 점수를 따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 이건 보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죠."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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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으로 빚은 대기만성형 선수

파리올림픽 하면 도경동 선수에게도, 체육회에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여권을 잃어버린 것.
"입국 심사하러 가는 길에 보니까 여권이 없는 거예요. 승무원에게 말씀드려 비행기 안까지 살살이 뒤지고, 공항에서 두 시간을 넘게 대기했는데 끝내 찾지 못했죠. 감사하게도 대사관에서 하루 만에 여권을 만들어 줬어요. 하마터면 올림픽에 참전하지 못할 뻔했죠. 결과가 좋게 나와서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해프닝이 됐어요(웃음). 그때 저 때문에 체육회에서도 많은 분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찔한 경험이지만, 도경동 선수는 “그래도 그런 일이 있어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라며 익살맞게 웃었다 이 같은 낙천적인 성격은 도경동 선수의 가장 큰 자산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라고 자신을 평가한 그는 그럼에도 올림픽 무대에 서는 미래를 상상하며 펜싱을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개인전 메달이 단 한 개도 없었어요. 고등학생 때도 고 3이 되어서야 메달을 따서 대학교에 갈 수 있었거든요. 물론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하다 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도 제가 불안해하면 코치 선생님께서 '너는 된다’라며 격려해 주셨고요. 그리고 정말로 대학교 4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었죠. 저는 제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 같아요. ‘하다 보면 결국 좋은 결과가 있겠지’하고요."
그는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펜싱을 그만두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생각나서’였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TV에서 펜싱 경기를 보고 전광석화로 이루어지는 승부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운명처럼 그에게 펜싱부 입부 제의가 들어왔다 런던올림픽의 감동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던 도경동 선수에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도경동 선수는 곧바로 부모님을 설득해 펜싱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높이뛰기, 야구 등 다양한 운동을 했지만 금방 싫증이 나 오래 하진 못했다던 그에게 펜싱만큼은 달랐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일주일 지나면 다시 생각나고 그러더라고요. 매력이 있었어요. 펜싱은 순간의 판단과 머리싸움이 중요하잖아요. 가위바위보를 몸으로 하는 느낌이었어요.”
펜싱의 매력에 빠져 하루하루 묵묵히 최선을 다한 도경동 선수의 진가는 대학에 진학한 후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21 대통령 배 전국남녀 펜싱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도경동 선수는 이후 각종 국제대회의 사브르 단체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22/23시즌 첫 국제대회인 알제 월드컵 단체전에 출전해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바르샤바 월드컵 단체전에서는 에이스가 맡는 마지막 9라운드 피스트에 올라 올림픽 3연패 레전드인 아론 실라지를 상대로 우승을 확정 짓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 펜싱의 새 역사를 쓰는 데 있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필요할 때 자신의 역할을 하는 선수, 그게 바로 도경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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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피스트를 향해

낙천적인 자세로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를 현실로 만든 도경동 선수. 그런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은 뜻밖에도 2024 파리올림픽 직후였다.
"끝나고 나서 조금은 그랬던 것 같아요.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나도 이제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시합에서 결과가 잘 안 나오면 ‘나는 잘하는 선수인데 왜 이것밖에 못 하자라면서 자꾸 저를 깎아내리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다 극복했어요. 오히려 그때의 마음을 발판 삼아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금메달 수상 이후 방황하던 도경동 선수는 부모님과 코치진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다시금 선수로서의 중심을 잡아갔다 그가 찾은 답은 매 순간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상상한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 그가 여태껏 펜싱을 해온 방법이었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도경동 선수는 현재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성실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그리는 다음 스텝은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내년에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경동 선수가 그리는 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도경동 선수는 “사람들이 ‘펜싱’ 하면 ‘도경동’을 떠올리면 좋겠다”라고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펜싱 역사를 넘어 우리 마음속에도 그의 이름이 오래도록 빛날 수 있도록, 또 한 번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그의 특급 활약이 기다려진다.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