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거침없었고, 날카로웠다.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라는 금자탑 앞에서 도경동 선수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쳤고,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혜성처럼 등장한 히어로가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한 끝에 기회를 잡은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가 지닌 가장 큰 무기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10년의 시간을 증명한 28초
"완벽합니다, 도경동! 5대 0으로 마무리합니다!"
2024년 8월 1일 새벽 4시를 향하는 시각 평소 같았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그날 대한민국 국민은 TV 앞에 모여 환호를 질렀다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결승전, 도경동 선수가 헝가리의 라브 크리스티안 선수를 상대로 연속 5점을 따내며 팽팽했던 경기 흐름을 순식간에 가져온 것이다. 후보선수였던 도경동 선수는 결승전 전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던 선수였다 ‘대한민국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가 목전에 놓인 중요한 경기, 6라운드 점수는 30대 29. 단 1점 차로 쫓기는 7라운드 피스트에 구본길 선수 대신 오른 도경동 선수를 보며 몇몇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졸이며 두 손을 꼭 맞잡아야 했다. 그러나 7라운드 시작 3초 만에 선취점을 따낸 도경동 선수는 이후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연속 5점을 획득했다. 우려가 환호로 바뀌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28초. 6라운드까지 30대 29였던 점수는 35대 29까지 벌어졌고, 대한민국은 최종 45대 41이라는 스코어로 금메달을 따내며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
결승전 이후 도경동 선수를 향한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7라운드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고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온 도경동 선수는 2024 파리올림픽 최고의 다크호스, 비밀병기, 신스틸러(scene stealer)로 불리며 ‘도경금(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오상욱, 구본길, 박상원 등 다른 ‘어펜저스’ 선수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인지도였지만, 단 28초 만에 대한민국 펜싱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새긴 것이다.
다크호스를 만든 믿음
2024 파리 올림픽은 도경동 선수의 올림픽 데뷔 무대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 3연속 우승이 걸린 단체전 결승전. 이 타이틀이 부담이진 않았을까? 도경동 선수는 오히려 ‘경기에 오르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경기장에서 몸을 풀며 형들이 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얼른 시합에 나가고 싶었어요. 결승전에서 제 출전이 결정됐을 때 형들도, 코치님들도 제가 들어간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고 저를 믿는다는 걸 느껴서 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경기에 들어가기 전 상욱이 형한테 얘기했거든요. 들어가서 상대 선수에게 어떤 기술을 펼칠 건지요. 그랬더니 상욱이 형이 ‘그러면 질 수가 없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생각한 기술을 다 펼치고 나올 수 있었죠."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원우영 코치는 경기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도경동 선수는 한국이 남자 사브르 팀 세계랭킹 1위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탠 능력 있는 선수라 믿고 있었다"라며 "그래도 5대 0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정말 완벽하게 해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도경동 선수는 2024년 1월, 튀니스 그랑프리 단체전 결승전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 헝가리와 맞붙은 결승전 8라운드까지 38대 4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9라운드에서 개인전 우승자인 아론 실라지 선수를 상대로 45대 44로 뒤집은 것. 이 경기에서 도경동 선수는 차세대 어펜저스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으며, 남자 사브르 단체 세계랭킹 1위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랭킹은 올림픽 대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의 활약이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라는 기록에 숨은 열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명승부를 펼친 그였지만, 피스트에서 내려온 뒤에는 경기를 보지 못하고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선수 개인의 최종 목표, ‘단체전 3연패’라는 대한민국 펜싱의 새 역사 앞에서 사실 긴장을 감출 수 없었던 것.
"상욱이 형이 개인전에서 온 힘을 다해 금메달을 땄잖아요.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고 있으면 점수를 잃고, 제가 안 보면 점수를 따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 이건 보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