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독립유공자의 후손, 매트 위 작은 거인, 한판승의 실력자 등 수많은 별명이 따라붙는 허미미 선수는 한국 여자 유도의 대들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올림픽 직후 어깨 수술로 인한 훈련 부족으로 세계 대회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했지만 이어진 라인루르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는 2연패를 달성하며 진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경기를 통해 슬럼프를 이겨낸다는 허미미 선수를 강하게 키우는 것은 쉼 없는 훈련과 좋은 경기 성과다. 다음 목표인 2028 LA올림픽을 향해 아침 일찍부터 훈련에 참여 중인 허미미 선수를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유도훈련장에서 만났다.
28년 만에 목에 건 은메달의 무게
2024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이뤄낸 깜짝 선전은 온 국민에게 기대 이상의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였다. 대회 초반부터 '활·검·총'이라고 불리는 양궁, 펜싱, 사격에서의 눈부신 성적은 연일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파리에 입성한 대한민국 모든 선수는 각자의 경기장에서 사활을 건 명승부를 펼치고 있었고, 대회 4일째 되던 날 국내 스포츠팬의 시선은 유도장 매트 위로 쏟아졌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로 28년 만에 획득한 여자 유도 은메달 덕택이다. 한국 유도의 건재함을 세계 무대에서 다시금 과시했던 그 메달의 주인공은 바로 57kg급 허미미 선수였다.
눈 떠보니 스타가 되었다는 표현처럼 국내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가 일제히 허미미 선수를 향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일한국인 3세로,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유도를 시작했던 허미미 선수는 지난 2021년에 이중국적을 포기하고 그 이듬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허미미 선수가 주목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남다른 이력은 올림픽 응원에 열광하던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메달 획득 직후에는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할머니 유언에 따라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뭉클한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허미미 선수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졌다. 이후 유도팀 동료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출전했던 혼성단체전에서 동메달까지 따내면서 생애 처음 올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품에 안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운동선수의 삶에 영광과 좌절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파리올림픽이 끝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허미미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6월, 2연패를 목표로 참가했던 2025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2회전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왼쪽 어깨 인대 수술을 받은 후 재활 기간을 오래 가진 탓에 실전 감각이 떨어진 것이 패배 원인이었다. 그러나 좌절은 허미미 선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불과 한 달 후, 독일에서 열린 2025 라인루르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이하 라인루르 U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파리올림픽이 끝나고 부상으로 인해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동안 경기에 거의 참여하지 못해서 이번 대회도 무척 부담이 컸어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우승까지 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허미미 선수 특유의 수줍은 미소로 '다행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지난 시간 동안 극복해야 했던 재활에 대한 조급함과 올림픽 은메달이 주는 중압감에서 말끔히 벗어난 듯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 보기 좋았다.
탁월한 승부사의 강인한 정신력
유도의 백미는 한판승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절묘한 기술로 상대 선수를 매트에 내리꽂는 광경은 다른 어떤 종목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한 흥분감을 선사한다. 허미미 선수의 주특기가 바로 한판승이다. 작년에 펼쳐진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여자 일반부 63kg급에 출전해서 네 경기 모두를 한판승으로 제압하며 금메달을 따냈던 허미미 선수는 이번 라인루르 U대회 결승전에서도 왼손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업어치기 기술이 제 주특기라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어떤 상황이나 자세에서도 상대방에게 업어치기 기술을 시도할 수 있도록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스포츠 세계는 냉혹하다. 오직 땀의 무게로 선수의 가치를 매긴다. 허미미 선수 역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불굴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선수다. 어깨 수술과 재활 치료로 인한 실전 공백을 채워준 건 훈련뿐이었다. 실제로 허미미 선수의 일과는 훈련의 반복이다.
"새벽 6시부터 7시까지 하루의 첫 운동을 시작해요. 다음에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로 하고 오후 3시부터 5시에 다시 훈련에 참여해요. 그리고 상황에 따라 야간 운동을 개인적으로 실시하고 있고요."
이곳,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빼곡하게 준비된 훈련을 거뜬하게 소화하며 대한민국 여자 유도팀을 이끌어갈 대들보로 자리매김 중이지만 낯설은 고국 땅에 처음 와서 적응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줄곧 일본에서 성장했던 허미미 선수에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부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거는 기대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다며 그녀는 지난 고충을 토로했다. 물론 2019년 6월, 한국 주니어 선수권 대회 우승과 함께 대한민국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로 여러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허미미 선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부각했다. 성인 대표선수가 된 후에도 그녀의 승리 퍼레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한판승을 가능하게 하는 업어치기의 화려한 기술만큼 허미미 선수를 탁월한 승부사로 만드는 것은 강인한 정신력일지 모른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허미미 선수만의 방법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어깨 수술 이후에 출전했던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서 라인루르 U대회에 참가할 때 평소보다 많이 떨렸어요. 그래서 경기에 더 집중했고 결국 금메달까지 딸 수 있었어요. 저한테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은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성과를 얻는 것이에요. 이번에도 그렇게 슬럼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