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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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은 순간의 스포츠다. 출발 신호와 동시에 쏟아낸 힘은 코너를 지나 직선으로 이어지고, 레이스는 짧은 시간 안에 끝난다. 이런 찰나의 순간을 반복하며, 선수들은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리듬을 국제무대까지 이어온 선수가 있다. 바로 생애 첫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나현 선수다.
빙판과 가까워진 시간
이나현 선수가 처음 빙판에 오른 건 초등학교 1학년, 학교 수업을 통해서였다. 스케이트를 신는 법도, 넘어지지 않는 법도 서툴렀던 시기였지만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감각만큼은 또렷이 남았다. 발바닥 아래로 전해지는 차가운 진동과 미세한 균형의 변화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집중을 요구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미끄러지는 느낌이 신기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때의 스케이팅은 기술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웠고, 속도보다도 '넘어지지 않는 법'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그는 취미가 아닌 '훈련'의 형태로 스케이팅을 마주하게 됐다. 이때부터 빙판은 일상의 중심이 됐다. 하루의 리듬이 훈련을 기준으로 짜였고, 스케이트를 신지 않는 날에도 몸은 늘 다음 레이스를 향해 있었다.
단거리 종목은 이나현 선수에게 가장 잘 맞는 종목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힘을 폭발시켜야 하고, 초반 가속에서 레이스의 방향이 갈리는 특성이 그의 강점과 맞아떨어졌다. 그는 단거리의 매력을 '속도감'으로 설명한다. "빠르고 폭발적인 힘을 내면서 초반부터 달려 나가는 게 매력적"이라는 그의 말처럼, 순간의 선택과 추진력이 기록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마음을 끌었다. 속도가 붙는 순간, 몸이 얼음 위로 '뜬다'라고 느낄 만큼 가벼워지는 감각도 단거리만의 특징이다. 단거리에서의 강점은 국제무대 성과로도 이어졌다. 2023~2024시즌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여자 500m에서 37초34의 기록으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단거리에서의 경쟁력을 분명히 증명했다.
그는 스스로를 '완성형 선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초반 스타트, 중반 리듬, 후반 힘 배분까지 아직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늘 '전체'를 본다. 특정 구간의 성과에 기대기보다, 레이스 전반을 고르게 끌어 올리는 데 집중해 왔다. 주니어 세계신기록이라는 성과도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다. 이 태도는 성적이 좋을 때도, 흔들릴 때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됐다.
찰나를 위한 준비
지난 12월에 있었던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은 이나현 선수에게 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같은 빙판에 서며, 그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 대회는 작은 차이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출발 가속, 코너에서의 자세 변화, 직선에서의 힘 분배가 곧 기록으로 이어진다. 이나현 선수는 그 차이를 체감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이번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에서 꾸준한 레이스 운영으로 상위권 시드를 유지한 이나현 선수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월드컵 무대에서 쌓아온 시간이 목표를 현실로 바꿔놓은 순간이었다.
"올림픽 출전만 해도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출전권을 확보하면서 인생의 목표 하나를 이룬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기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함께 생겼습니다."
출전권 이전에는 '올림픽에 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올림픽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가 새로운 질문이 됐다. 이 변화는 훈련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꿨다. 훈련의 양보다 질을 더 세밀하게 점검하게 됐고, 한 번의 레이스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더 촘촘하게 나뉘기 시작했다. 스타트 연습, 코너 구간별 체크, 후반 스피드 유지까지 세부 항목이 명확해졌다. 그는 부족한 부분을 특정하기보다는, 레이스 전반에서 보완할 점을 차분히 점검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 더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그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나현 선수의 가장 큰 강점은 '파워'다. 힘이 좋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그 힘을 스케이팅에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하느냐를 과제로 꼽는다. 단거리에서 파워는 단순히 강하게 밀어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코너에서 흔들리지 않게 지탱하고 직선에서 추진으로 바꾸는 기술과 연결된다.
"파워 자체는 좋아졌지만, 그 힘을 스케이팅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아직 더 연습이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은 그 부분을 가장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물론 레이스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다. 예상과 다르게 흐름이 꼬이면 당황하는 순간도 생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는 그 빈도가 더 잦다. 그는 아직 스스로를 '노련한 선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반복해 온 훈련을 믿을 뿐이다. "연습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그 과정을 믿고 다시 레이스에 집중하는 편이에요"라는 그의 말처럼,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연습의 힘을 믿는 것이다. 출전권을 확보한 이후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습을 믿는다'라는 생각은 더 단단해졌다.
국제무대를 경험하며 레이스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기록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차이가 운영에서 느껴졌고,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한 방향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세계 무대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 정교한 디테일 하나가 그대로 결과로 이어진다. 그는 그 점을 의식하며 자세와 리듬, 힘의 배분처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단거리 레이스에서 이나현 선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코너다. 속도가 최고조에 이르는 동시에 가장 흔들리기 쉬운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코너를 돌 때 가속이 떨어지지 않도록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자세가 무너지면 곧바로 스피드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수차례의 레이스를 통해 체감해 왔기 때문이다. 코너를 어떻게 빠져나오느냐에 따라 직선 구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점은, 그의 레이스 운영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장비에 대해서는 크게 예민한 편은 아니라고 말한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장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종목이지만, 그는 세밀한 튜닝보다는 익숙한 세팅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평소 사용하던 장비와 감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레이스를 준비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빙판 위에서의 안정감은 새로운 변화보다는 반복된 사용과 적응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그의 준비 방식 전반에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