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지난해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린 김원호(삼성생명, 27)선수가 제72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2025 파리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우승, 월드투어 단일 시즌 11관왕, 기록만 놓고 보아도 대상의 자리가 어색하지 않은 성취다.
그러나 무엇보다 빛난 것은 코트 위에서 성장해 온 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겹겹이 쌓여,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섰다.
대상의 무게, 책임으로 답하다
대한체육회 체육상은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체육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경기,지도,심판,생활체육,학교체육,공로,연구,스포츠가치 등 8개 부문 수상자가 선정되고, 그 가운데 단 한 명에게만 대상이 돌아간다. '최고의 영예'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그 영예의 주인공은 수상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김원호 선수는 기쁨보다 먼저 '무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조금 얼떨떨했습니다. 이 상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이 상의 무게가 느껴졌고, 동시에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 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 혼합복식 은메달, 2025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단일 시즌 11관왕 그리고 배드민턴 복식 세계랭킹 1위 등. 나열만으로도 벅찬 수식어 앞에서 그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표정으로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위상을 더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 책임감의 뿌리는 어머니 길영아 감독에게 닿아있다. 김원호 선수의 어머니이자 현재 삼성생명 배드민턴단을 이끄는 그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과 여자복식 은메달을 획득한 복식의 전설이다. 김원호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라켓을 잡으며 배드민턴을 놀이처럼 여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배드민턴 선수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 그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길영아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웠던 어린 김원호 선수가 길영아 감독에게 "엄마가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라고 얘기했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당시 길영아 감독은 "배드민턴계에서 엄마는 평범한 사람일 수가 없다"라며 "네가 스스로 '길영아의 아들'로 살지 말고, 엄마를 '김원호의 엄마'로 살게 해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 김원호 선수가 운동선수로서의 목표를 다잡고, 동시에 메달의 무게와 책임감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운동선수 선배로서 어머니가 알려주신 것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책임감과 위기를 견디는 힘이었어요. 국가대표가 되고 선수촌에 들어갔을 때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도망치면 다른 일도 못한다고 하시며 '그 순간을 이겨내야 한다'라고 하셨죠. 사실 저는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웃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단호한 말씀이 더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그 말 덕 분에 버틸 수 있었고요."
은메달을 통해 배운 것
김원호 선수의 2025년을 떠올리면 '세계 1위'와 '11승'이라는 숫자가 먼저 따라온다. 그러나 기록은 결과일 뿐이다. 그 이면에는 위기를 버티고 흐름을 뒤집어 온 시간이 있었다. 예리한 네트플레이가 빛난 날도 있었지만, 그의 진짜 강점은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끈기였다.
그 힘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나은 선수와 호흡을 맞춘 혼합복식에서 김원호 선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이효정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16년 만의 혼합복식 메달이었다. 대한민국 배드민턴 전설의 아들이 아닌, 김원호라는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 배드민턴 역사에 새긴 순간이기도 했다.
은메달을 획득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조별리그 첫 경기 인도네시아전에서 2-1로 석패했고, 이어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낙승을 거두었으나 이후 당시 세계랭킹 1위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해 2-0으로 패배했다. 혼합복식 특성상 남자 선수가 공격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인데, 탄력 좋은 공격형 페어인 중국 선수들과의 격차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이후 김원호 선수는 정나은 선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호흡을 맞추고 더 다양한 전략으로 8강을 준비했다. 8강 말레이시아전에서 김원호 선수는 과감하게 전진하여 자신의 장기인 네트플레이로 득점하며 상대팀을 수세에 몰았다. 결과는 2-0 승리. 그는 4강 진출이 확정된 뒤 당시 인터뷰에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순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강 상대는 같은 대표팀인 서승재-채유정 선수였다. 같은 대표팀을 상대로 치르는 부담스러운 경기인데다가 체력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3세트 도중 메디컬 타임을 요청할 만큼 숨이 가빴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초접전 끝에 스코어 23-21, 단 한 점 차이로 결승에 올랐다. 은메달은 그렇게 버티고 견뎌낸 끝에 얻은 값진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