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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히어로

2026년 7월 스포츠히어로
누구보다 노력하는
최고의 선수를 꿈꾸다
다이빙
김영택 선수
선수사진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김영택 선수는 도쿄와 파리에서 열린 두 차례의 올림픽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를 누빈 다이빙 국가대표 선수로 지난 2025 라인-루르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이번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특별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땀 흘리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기를 꿈꾸는 다이빙 김영택 선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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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이기고 몸을 던지다

10m 플랫폼 끝에 서면, 발끝 아래로 파란 수면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고 알려진 높이에서, 수백 번 같은 동작으로, 공중으로 몸을 던지는 선수가 있다. 두 차례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한 수많은 국내외 대회를 지나온 다이빙 국가대표 김영택 선수에게 이 높이는 공포이자 일상이다. 2001년생으로 이제 만 24살, 2020 도쿄하계올림픽대회와 2024 파리하계올림픽대회에 연달아 출전하며 한국 다이빙의 젊은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의 자기평가는 늘 엄격하다. “도쿄랑 파리,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세 개 다 뛰었는데 성적이 목표한 것보다 좋지 않았었으니까요.”
특히 2020 도쿄하계올림픽대회에서 느꼈던 긴장과 아쉬움, 2024 파리하계올림픽대회에서 준결승 문턱을 넘지 못한 경험이 그에게는 아직 현재 진행형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22 항저우 하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형인 김영남 선수의 은메달 획득에도 마냥 웃을 수 없었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는 다가오는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반드시 메달을 가져와야 하는 무대라고 생각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항저우 때도 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는 꼭 메달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그 각오 뒤에는 허리 통증과 재활로 점철된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있다. 김영택 선수는 선발전에서 시작된 허리 통증이, 어릴 때부터 훈련이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찾아와 바쁜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던 ‘예고 없는 통증’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도 허리가 좀 안 좋았어요. 거의 만성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재활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하고 있지만, 예고하고 아픈 게 아니라 훈련하다가, 걷다가 갑자기 찾아오더라고요.”
올해 1월에서 3월 사이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몇몇 대회를 포기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재활과 물리치료, 스트레칭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만이 선수로서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통증을 관리하고 몸 상태를 끌어올려 대회 시기에 맞춰 최선에 가까운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고 이번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한번 몸 상태를 조율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즐거움은 있다. 그는 다이빙의 매력에 대해 ‘잘 들어갔을 때 느낌’이라고 이야기한다. 수면 위로 파문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착수했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충격과 동시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잘 들어갔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원초적으로 좋은 느낌이 있어요. 그때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가끔은 시상대에 올랐을 때 그 감각이 더욱 선명해지기도 해요.”
그 순간만큼은, 그가 그 높이에서 떨어지며 겪었던 모든 실패와 통증이 잠시 사라진다고 말한다. 준비 과정에서 아프게 떨어지고, 잘못 떨어졌던 기억들은 그 순간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의 순간에는 훈련 도중 손목이 부러졌던 경험, 어깨 부상이 남긴 후유증, 스프링보드에 부딪혀 크게 다쳤던 기억이 같은 기술을 시도할 때마다 불쑥 떠오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도자들은 공포를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난도를 조정하고, 반복 훈련을 통해 몸이 먼저 움직이도록 돕는다. 김영택 선수는 그 과정을 ‘연습으로 쌓아 올린 신뢰를 통해 공포를 이겨내고 다시 도전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공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인정한 채 몸과 기술을 믿고 뛰어내리는 것이 망설임 없는 점프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10m 플랫폼은 공포감이 단점인 것 같아요. 다쳤던 기억들이 계속 생각나니까요. 그때마다 지도자분들이 도와주셔서 다시 도전하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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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의 경험을 쌓아가다

국가대표의 삶에서 허리 통증은 비행과 시차 적응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국제 대회를 자주 다니는 선수지만, 시차와 장시간 비행은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장거리 비행은 허리가 좋지 않은 선수에게 가장 큰 고역 중 하나다.
“시차 적응이랑 비행기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이 힘든 것 같아요. 허리가 좀 아프다 보니까요.”
그는 비행기 안에서 좌석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안전벨트 착용 안내등이 꺼질 때마다 통로로 나가서서 스트레칭을 한다. 화장실 안에서 몸을 풀고, 기내에서 억지로 잠을 맞춰 보며 도착 후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곧 그의 평소 루틴이 됐다. 놀러 가는 비행이 아니라 경기하러 가는 길이라는 현실 속에서, 허리와 컨디션을 지키는 것은 그가 경기 때마다 수행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다.
지난 6월에 진행된 일본 전지훈련에서 그는 이번 하계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수영장을 다시 찾았다. 지난 2020 도쿄하계올림픽대회를 치렀던 바로 그 경기장이었기에 연습하는 내내 당시의 긴장과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걱정과 동시에, 이번에는 더 잘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경기장의 보드가 한국보다 조금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며, 이런 환경적 변화를 몸으로 체득하고 적응해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다이빙 선수들의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다들 다이빙장이 어디나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프링보드와 플랫폼이 경기장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말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자동차라도 각자 특성이 다르다”는 그의 비유처럼, 같은 규격의 보드라도 탄성과 반응, 수평 상태가 미묘하게 달라 선수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플랫폼의 수평을 맞추는 작업 역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경기장에 따라 플랫폼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곳도 있고, 완전히 평평하지 않은 곳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섬세한 감각 속에서 경기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현지 전지훈련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은 실전을 준비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지난해 7월에 개최된 2025 라인-루르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참가도 김영택 선수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대학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출전을 꿈꿔왔지만, 올림픽대회 진출을 위한 일정 때문에 참가할 수 없었던 대회다. 그러나 나이 제한 때문에 이번 출전이 마지막 기회가 되면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 하나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나이 제한이 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였고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참가해 보니 제가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
이처럼 어렵게 참가를 결심했던 대회였지만 김영택 선수는 결과를 통해 기량을 증명해 냈다. 모든 다이빙 종목에 참가해 10m 플랫폼 단체전과 싱크로나이즈드 종목 등 단체전 은메달을 포함해 총 6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것이다.
“대회 진행자가 저를 보면서 비지맨(Busy man)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외국 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주 종목만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종목을 오가며 연달아 출전하는 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에요. ‘할 수 있으면 다 한다’라는 마음을 먹고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죠.”
이런 강행군은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일정이었지만, 지도자와 팀 동료들이 끝까지 함께해 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리고 동시에 동생인 김영호 선수와 함께 뛰며 단체전 메달을 따낸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 국가에서 동일 종목에 세 명이 출전할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해, 김영호 선수와 함께 싱크로 경기를 뛰었지만, 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인원은 두 명뿐이었기에 동생을 두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고 한다. 그때 김영택 선수는 김영호 선수에게 다음 기회를 이야기하며 어깨를 두드렸다고 말했다.
“막내한테는 ‘첫 국제 대회니까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내년에 대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리니까 잘 준비해서 그때 꼭 같이 나가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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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라는 특별한 이름

김영택 선수는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다이빙 삼 형제’로도 유명하다. 둘째 형인 김영남 선수에 이어 국가대표 올림픽 출전 선수가 됐고 막냇동생인 김영호 선수 또한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름을 올려 국가대표 3형제로 불리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평이다. 운동을 하지 않는 첫째 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이빙이라는 종목에 몸을 던진 형제라는 점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가장 먼저 다이빙을 시작한 것은 형인 김영남 선수였다. 형이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건강하게 성장하자 부모님은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김영택 선수에게 “수영을 배워보라”며 수영장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이미 다이빙 선수로서 물 위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막냇동생은 학교가 끝난 뒤 집에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형들을 따라 수영장에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다이빙이 어느새 삼 형제를 모두 국제 무대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김영택 선수는 집에서도 자연스럽게 다이빙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시합 이야기와 기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참고도 되고 어려운 점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경기를 잘못 뛴 날에는 다음 경기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왜 그렇게밖에 못했냐’고 쓴소리가 오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삼 형제의 마음속에는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끼는 애정이 자리해 있다. 형 김영남과의 관계를 묻자, 그는 도쿄올림픽 당시를 떠올렸다.
“20살의 어린 나이로 올림픽 무대에 올랐을 때, 시합을 잘 치르지 못하고 돌아와 자주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영남이 형과 우하람 형이 피자를 사주며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돼.’라고 말해 줬던 좋은 기억이 있어요. 덕분에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은 경기의 흐름, 실수의 경험, 연습 루틴을 동생에게 자연스럽게 나눴고 김영택 선수는 그 경험을 통해, 자신도 후배가 들어오면 똑같이 대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누군가의 울음을 달래 주던 형들의 모습은, 그가 꿈꾸는 ‘선배 선수’의 이상형이 됐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어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라났다고 한다. 그렇기에 “같이 세 명이서 대표팀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형제의 목표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같은 큰 경기만큼이나, 형제 셋이 같은 대표팀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형제의 노력과 꿈이 대한민국 다이빙 종목을 미래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사고도 많이 치고, 운동을 하기 싫다고 떼쓰는 네 아들들을 감당해야 했어요. 운동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 마찬가지였지요. 지금은 네 형제가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너무 고생하셨던 건 여전히 기억에 선명해요. 그래서 부모님께 보답하기 위해 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현재가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그의 앞에는 또 하나의 현실적인 과제가 놓여 있다. 경영 종목과 달리 다이빙에는 육군체육부대 팀이 없어, 대부분의 선수가 현역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김영택 선수는 2028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대회를 마지막으로 입대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아경기대회야말로 그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형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왔기에 다이빙 종목에 도전하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저라는 선수를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잘하는 선수, 멋있는 형으로도 기억되고 싶지만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출전하는 대회에서도 누구보다 노력할 겁니다.”
도쿄와 파리에서 쌓은 경험, 아시아경기대회와 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의 기억을 모두 끌어안고, 팔과 어깨, 허리의 부상과 공포를 견디며 다시 한번 올림픽 무대의 플랫폼 끝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김영택 선수. 그가 세계 무대에서 보여줄 최고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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