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스포츠히어로
국기(國技)의
국
가
대표라는
자부
심을
가슴에 품다
태권도
진호준 선수
본 콘텐츠는 대한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에서 발췌 되었습니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國技)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무예를 바탕으로 창시된 국제공인스포츠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을 담은 무술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목으로 자리 잡은 태권도에서 국가대표가 된 유망주 뉴스타, 진호준 선수에게서 태권도의 정신을 배워보자.
태풍 같은 발차기, 바위 같은 주먹, 인간이 가야 할 길
태권도(跆拳道)는 그 이름에 태풍처럼 힘 있게 뛰어 차는 발,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한 주먹, 인간이 가야 할 옳은 길이라는 3요소가 드러나 있다. 이 중에서도 다른 무술과 태권도의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발차기다. 2007년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파이트 사이언스에 의하면 일본 가라테의 앞차기가 195kg, 태국 무에타이의 돌려차기가 635kg, 브라질 카포에라의 돌려차올리기가 약 816kg의 힘을 내는 것에 비해 한국 태권도의 돌려차기는 약 1043kg의 힘을 낸다. 도구 없이 맨 몸으로 겨루지만, 그 위력만큼은 어느 도구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태권도는 공격보다 방어를 위한 무예이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공격을 받았
을 때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정신과 육체 모두를 수양하는 단련방식이기에 교육적인
수단으로도 사랑받고 있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태권도가 본격적인 종목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88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부터 였는데, 현재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공정한 경기를 위해 태권도의 룰과 장비는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국기(國技)를 단련하며 태권도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유망주가 있다. 바로 뉴스타로 선정된 진호준 선수다. 진호준 선수는 2018년 제99회 전국체육대회, 2019년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태권도 겨루기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2020년에는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태극기를 가슴에 품게 됐다.
동네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워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한 번 쯤 태권도를 배워본 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나라에서 태권도는 흔한 운동이었고, 진호준 선수 역시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
럼 그저 부모님의 권유로 태권도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형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태권도장에 다니던 그였지만, 어린나이임에도 크고 작은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그 실력이 드러났다.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시켜보라는 권유를 받은 부모님께서 저한테 선수 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선수라는 말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해보겠다고 했죠."
이후 그는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선수부가 있었던 송화초등학교로 전학했고, 더 많은 실력자들과 경쟁하며 성장해나갔다. 더 잘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는 주눅 드는 대신 '이 정도면 되겠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깬 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기본기를 기르는 데 주력했고, 5~6학년이 되자 눈에 띄게 성장하며 구체적인 성적을 냈다.
처음 그를 본 이들은 그에게 '타고났다고 말하곤 했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예측하지 못한 빈 곳을 공격하는 능력, 원하는 타격 부위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은 다른 이들이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타고났다'는 말 대신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는 말을 건네곤 한다.
어릴 때 한 선택이지만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는 태권도선수로서 태권도를 십여 년 넘게 해오며 후회할 일보다 감사할 일이 훨씬 많았다고 말한다.
“운동하다 보면 힘들 때야 많죠. 그런데 저보다 성적이 잘 나오는 선수, 안 나오는 선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모두 열심히 훈련하거든요.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훈련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